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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고소하다 vs 꼬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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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고소하다 vs 꼬숩다

입력
2009.12.18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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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숩다'는 말은 남편이 생등심을 먹을 때 쓰는 표현이다. 어렸을 적 할머님과 보낸 시간이 많았다는 남편의 어휘는 본인의 나이보다 훨씬 앞 세대들의 것일 때가 많다. 내가 단순히 '고소하다'고 표현하는 한우 등심 맛을 남편이 '꼬숩다'고 정정해 주고 나면 '맞아, 고소하다는 표현은 땅콩 캐러멜에나 어울리는 말이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나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음식 맛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이 다양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꼬들꼬들 바삭바삭 포실포실 달콤 달큰 들큰 들척지근 매콤 칼칼 등 그 나열만으로도 신문 한 장은 다 메울 수 있겠다. 같은 음식을 먹고도 다 다른 표현을 할 수 있게 풍부한 내 나라말이 음식하는 사람으로서 더 고마울 뿐이다.

맛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데, 비즈니스성의 식사 자리에서 음식 맛을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 상대방의 성격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시다, 달다'고 잘라 말하는 사장님, '새콤하면서 달달하다'라고 표현하는 사장님은 사장이라는 직함은 같아도 개성이나 일 처리 방식이 완전히 다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연애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음식이 직업인 나를 앞에 두고 부러 어려운 단어를 써 가며 맛을 분석하는 남자, '시다, 달다'는 표현조차 없이 밥만 먹는 남자, 매번 이 맛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 의견을 지나치게 묻는 남자보다는 고기 한 점을 씹으며 자기도 모르게 '꼬숩다'고 감탄하는 남자가 나는 좋았던 것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처럼 혼자 앉은 백화점 식당가의 한 음식점. 나처럼 일하던 중 혼자 들러 밥을 먹는 점심 손님들이 많은 가운데 아가를 데려온 젊은 엄마가 눈에 띈다. 생후 1년이 막 넘었을까 싶은 유모차 속의 아가에게 엄마는 밥 한 술 뜰 때마다 '딜리셔스' '애플' '라이스' 등의 단어를 크게 말해 주고 있었다.

영어 단어와 일찍부터 친해지는 일은 물론 중요할 것이지만 아직 제 나라의 말도 모르는 아가에게는 무엇이 시고 단 맛인지부터 가르쳐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내 오지랖이 언제부터 이리 넓었나 싶어 반성했다. 마침 상에 나온 된장찌개 정식은 게 다리를 넣고 끓인 덕에 짭짤하면서도 시원한 단맛이 났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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