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과 12월, 산란을 앞둔 도루묵들이 동해 연안으로 몰려든다. 강릉 시내의 식당들 밑반찬으로 도루묵이 올라오는 계절이다. 점심과 저녁, 두 곳의 식당에서 도루묵 조림과 구이를 먹었다. 강릉 토박이들은 이맘때 지천으로 넘쳐나던 도루묵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어획량이 하도 많아 삽으로 떠서 나르던 생선이다.
플라스틱 바가지를 가져가면 개 사료로 쓰라며 거저 주기도 했다. 그 흔하디 흔한 도루묵을 강릉 사람들조차도 구경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도루묵을 먹지 못한 사람들의 원성도 자자했다고 한다. '금도루묵'으로 불리던 때였다. 뭐니뭐니 해도 알이 꽉 찬 '알갖이 도루묵'이 최고다. 어획량이 줄어 값이 두 배로 뛰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민들의 음식이다. 점심의 도루묵 조림은 맛있었는데 저녁의 도루묵 구이는 점심의 도루묵 맛만 못했다.
간이 안 맞은 듯도 하고 조금 늦은 점심은 허기 때문에 더욱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피난을 가던 선조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도 맛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내렸다가 너무도 맛없어 그 이름을 거두었다는 이야기. 귀하고 천한 것은 그렇게 때에 따라 달라진다. 도시의 시끌벅적함에서 물러나 바다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도루묵을 먹는다. 도루묵 알 터지는 소리만 시끄럽다. 오랜만의 고요한 밤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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