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서 더 빛을 발한 현대자동차의 성공 비결은 뭘까.
소형차 부문의 강한 경쟁력과 공격적 마케팅 등이 꼽히지만, 핵심 비결은 GM이나 도요타 등 글로벌 강자에 앞서 신흥시장을 선점한 것이었다.
현대차는 미국(2005년), 유럽(2006년)에 앞서 인도(1997년)와 중국(2001년)에 현지 공장을 지은 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폈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번 위기를 통해 신흥시장 비중이 높아지면서 현대차 위상을 높이는 원동력이 됐다.
현대차의 신흥국 우회전략은 갓 해외진출을 시작한 국내 금융투자업계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 홍콩, 인도, 브라질 등에 거점을 확보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구재상 사장은 "강자가 몰린 선진국보다는 미개척 신흥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에서 열세였던 현대차가 신흥시장을 거쳐 선진시장에 진출했던 전략과 동일하다.
실제로 올 들어 이어지는 주요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 목적지는 중국과 동남아에 몰려 있다. 특히 중국 진출의 교두보이면서도 전세계 투자은행(IB)이 활동하는 홍콩에는 대부분 증권사가 영업망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1억 달러를 투입, 홍콩 금융 중심가에 투자은행(IB) 사업을 위한 현지법인을 출범시켰다. 산은금융지주 계열인 대우증권은 산은의 해외사업 청사진에 맞춰 1단계로 중국과 홍콩을 전략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며, 미래에셋증권도 2007년 1월 설립한 홍콩법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는 현대ㆍ우리ㆍ한국투자ㆍ동양ㆍSK증권 등이 거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동남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향후 잠재력이 풍부한 만큼 유가증권 투자와 해외펀드, 자원개발 등 다방면에 걸쳐 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가 터번을 쓰는 인도인에 맞춰 현지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지붕을 높이고, 대신 중국에서는 최신형 모델을 투입했던 것처럼 금융투자업체도 철저한 현지화로 방향을 틀고 있다.
과거엔 현지법인 대표와 임원은 한국인이 독식하고 현지인은 하급직에만 배치되는 게 관행이었으나, 이제는 핵심 임원까지 현지 전문가로 채용하는 게 대세다.
삼성증권은 콜린 드래드베리 이사와 윌리 홍 이사를 각각 홍콩법인 리서치센터장과 주식운용 책임자로 영입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홍콩법인 투자전략을 윌프레드 시트 최고투자책임자(CIO)에게 맡긴데 이어 인도 법인의 경영전권을 아린담 고쉬 대표에게 맡겼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정 지역에만 몰려 국내 업체간 출혈경쟁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해외로 나설 만큼의 경쟁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한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도 동남아 지역에 대한 '묻지마 투자'에서 비롯됐다"며 신중한 행보를 당부했다.
한편 개별 업체와는 별도로, 한국거래소 차원의 해외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채권매매)가 한국형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캄보디아와 라오스(2010년 개장 예정) 역시 '코리안 스탠다드'를 채택할 계획이다.
한국거래소 이돈규 홍보부장은 "베트남에서 국내 증권사가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현지 시스템이 한국과 똑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FTSE 선진국지수 편입에 이어 내년에는 MSCI에서도 선진국 지수 편입이 예상되는 등 한국 증시의 국제화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 전문가 제언/ "해외진출은 필수… 유럽 소형 운용시장 인수도 방법"
"한국 금융투자업계가 성장하려면, 해외진출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를 해외에서 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미국, 유럽보다는 중국이나 동남아로 진출하는 것도 적절한 전략이다. 우리 경쟁력 수준으로 선진국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급성장하는 중국시장에는 미국 유럽 금융사들이 본격 진출할 것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지원도 있어야 한다.
장기 관점에서는 유럽지역 소형 운용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금융위기 이후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인적 구성이 탄탄한데도 한계상황에 몰려 헐값에 거래되는 소규모 펀드가 많기 때문이다."
김재칠 한국자본시장연구원 동향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