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의 저자 이현우(41ㆍ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라는 이름은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책깨나 읽고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치고 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동유럽의 털북숭이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얼굴을 아바타 삼아,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는 자칭 "곁다리 인문학자"가 바로 그다. 이 책은 그의 왕성하고도 분방한 인문적 주유를 보여주는 문화 비평집이다. 로쟈의>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이 대학 대학원에서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신문' 등에 서평을 연재하고 있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개설해 서평을 쓰고 있다.
"좁게는 러시아 문학이 전공이죠. 그 분야의 대학 강의도 하고 있고. 그런데 문학이 문체분석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삶을 깊이 그리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자연스레 다방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철학이나 역사에도 굳이 칸막이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경계 없는 인문지성'으로 부르는 그의 외연을 금 그어 보려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다. 이씨에겐 영역의 경계뿐 아니라 문화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경계도 큰 의미가 없는 듯했다. 온라인 글쓰기 특유의 '제스처'(댓글 형태의 글 등)도 간간이 보이는 이 책을 통해, 이씨는 비평적 글쓰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시나 소설도 직접 써 보면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고, 강의도 직접 해봐야 자신의 앎을 정확히 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의 빈 틈을 보게 되는 거죠. 일종의 앎의 변증법이랄까요. 어떤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은 그 텍스트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완성된다고 해도 될 겁니다."
비평서라는 책들이 쉬 두루뭉술한 칭찬으로 흐르기 쉬운데 <로쟈의 인문학 서재> 는 때로 무람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신랄하다. 이씨는 "심성이 본래 그렇다"며 웃었다. 그리곤 "좋은 면만 보기엔 인생이 짧지 않냐"며 "비평에 있어서 분명한 가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아이들도 좋은 면만 보면 다 천사 같지만, 야단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 로쟈의>
'로쟈'라는 필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이름. 그런데 다소 험상한 지젝의 얼굴을 그 아바타로 사용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지젝은 코뮤니스트죠. 코뮤니스트는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는 개념(공산주의)으로 주로 쓰이는데,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함께 즐길 수도 있고요. 내가 방점을 찍는 부분은 앎을 공유하는 거예요. 지식이라는 재화는 얼마든지 나눠 가질 수 있으니까요." 죄와>
유상호 기자 shy@hk.co.kr
● 심사평/ '대중지성'의 교양서 쓰기 새로운 지평 열어
교양 부문 저술상 심사에서는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질문이 좌중을 선회했다. 시민의식과 상식의 최대공약수를 교양의 핵심으로 볼 것인가, 반짝이는 예지와 지적 정밀성에서 교양의 위안을 구할 것인가, 시선들이 엇갈렸다. 저자가 책의 단독 책임자인가, 편집자의 개입은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가도 쉬운 결론을 허용치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논의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하는 책들이 교양의 영역을 확장하는 길잡이로 떠올랐음을 말하는 것일 터. 그런데 길잡이라. 책에 대한 책이야말로 교양의 길잡이로는 제격이 아니겠는가. <로쟈의 인문학 서재> 에서 우리 시대의 독서꾼 로쟈가 보여준 책 읽기의 황홀함 혹은 고통은 그가 일관성 있게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이 책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대중지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그의 작업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로쟈의>
한정숙ㆍ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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