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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래 장인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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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래 장인들을 위하여

입력
2009.12.1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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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3,000명을, 그것도 나이 직업 성별이 각각인 사람들을 2시간 동안 휘어잡아 울고 웃게 만들다니. 흐트러지기 일쑤인 학생들의 집중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내게는 참 부러운 일이다. 얼마 전에 장사익 공연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자그마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로 청중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가슴에 맺힌 슬픔을 뻥 뚫어주는 그는 분명 작은 거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 부르는 한 사람의 천재가 이룬 업적이다.

그러고 보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는 연말에 어울리는 시,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를 쓴 정현종 시인도 그렇다. 그는 헛헛한 우리마음을 늘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1970년 대 일본 중부의 산골마을에 스즈키 다다시라는 연출가가 나타났다.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 마을을 연극촌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제 도가 연극촌은 여름마다 국제연극제가 열리고 환상적 공연이 펼쳐지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오래된 전통가옥을 소극장으로 만들고 호수를 배경으로 야외극장을 세워 그 곳에서 한여름 밤의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많은 이들이 산골마을로 찾아 든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설치예술가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가 독일 제국의회 건물을 온통 은색 천으로 포장해 버린 사건 역시 흥미롭다. 거대한 건물 전체를 10만㎡의 천으로 둘러싼 작품은 1995년 공개되어 2주간 전시되었다. 통일과 함께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옛 제국의회 건물을 연방의회로 쓰기로 했는데, 그 전에 이 퍼포먼스로 과거 역사를 포장해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연다는 의미가 있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연방의회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한바탕 신나는 축제를 벌였다. 상상력이 우리를 얼마나 신나게 해주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언제쯤 우리도 휴전선을 온통 천으로 둘러싸고 축제를 벌이는 날이 올까.

이갑용은 10년 동안 120여 개 돌탑을 쌓아 저 유명한 마이산 탑을 완성하였다. 시아버지가 시작한 매화나무 심기를 며느리가 이어받아 마침내 섬진강변을 온통 매화마을로 만들기도 하였다. 덕분에 해마다 봄이면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매화꽃 향기에 취한다.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인물들의 비범함은 모두 공부와 상관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능력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천재나 장인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생들은 성적, 어른들은 돈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느라 개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노래를 잘 부르는데, 절절한 시를 쓰는데,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는데 수능 성적이 무슨 상관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미래의 장인들을 수능 성적으로 줄 세워 자괴감을 주지 말고, 그들의 끼와 창의력을 적극 북돋아 주자. 그래서 수많은 천재들이 여러 분야에서 제각기 개성을 뿜어내며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그런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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