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16일 오전 9시쯤 당 최고위원ㆍ중진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여야 대표 3자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여야 협의 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하겠다"(김은혜 대변인)는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청와대의 입장 발표가 이처럼 늦은 것은 정 대표의 제안을 수용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또 당청 간 3자회담에 대한 사전 조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회담 성사 여부 및 결과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정 대표 모두 부담을 안게 됐다. 청와대는 회담자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고, 회담이 불발될 경우에는 정 대표가 곤혹스럽게 된다.
정 대표는 얼마 전부터 취임 100일인 15일에 맞추어 3자 회담을 제안할 것을 결심하고 측근 의원들을 통해 청와대와 조율을 시도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청 실무진 사이에 3자 회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는 했지만 청와대의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며 "때문에 15일엔 여야 대표 회담만 제안한 뒤 당청 사이에 다소 진전이 있어서 16일 3자 회담을 제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당청이 낮은 수준의 원론적 교감만 한 상태에서 정 대표가 3자 회담을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정 대표 측은 16일 오전 당 회의에서 3자 회담을 공식 제안하기 직전 청와대 정무 라인과 민주당 강기정 대표비서실장에게 "정 대표가 오늘 3자 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각각 통보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민주당은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3자 회담을 전격 수용하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이 청와대로 넘어간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덴마크 방문 일정(17~19일)과 정몽준 대표의 입장, 향후 여야 관계 등을 놓고 다각적으로 검토한 끝에 "회담 의제에 대한 여야 협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유보적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 내부에선 "예산 문제는 국회에서 여야가 해결할 사안이지, 대통령이 나설 의제가 아니다"는 신중론이 많았다. 또 앞으로 여야 대치 구도가 '이 대통령 대 야당'으로 흐를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 측은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의제와 시기 조율 등 회담을 위한 추후 절차를 한나라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라는 의미"(정양석 대표비서실장)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정무 조정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 대표의 의욕이 과한 것 같다"는 등의 지적이 나온다. 어쨌든 한나라당 정 대표는 회담 성사 여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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