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보호에 초점을 맞춘 각 부처의 새해 업무보고가 연말에 한창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해처럼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처방으로 위기에서 확실히 벗어나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희망의 싹을 보여주자는 취지다. 과거와 달리 재정ㆍ금융 관련 부처보다 노동 복지 여성 등 서민층과 고용 창출의 실무부처 보고를 앞세운 것에서도 친서민 기조를 강조하려는 뜻이 읽힌다.
그러나 장밋빛 일색의 내년 청사진에 가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실천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 아이디어 경연장 혹은 백화점 같은 정책 이벤트가 홍수를 이루지만 이 구상을 뒷받침할 실행계획이 부족하고 어디에서 그 비용과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해 예산안의 국회처리가 더욱 꼬여가는 상황에서 정부가'서민층의 천사'를 자임하며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이나 법 절차 측면에서도 온당치 않다.
간병 서비스를 건강보험 급여대상에 포함시키고 임금 피크제 및 정년 연장을 검토하며 여성들을 위한 유연근무제(퍼플 잡)를 도입하는 것 등은 모두 바람직하고 꼭 해야 할 일이다. 대학에 취업지원관을 배치하고 취업계층을 위한 취업주치의제를 운영하며 사회적 기업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신선한 발상이다. 하지만 개개 사안들은 건보시스템 개혁, 고용시장 개편, 기업의 고용관행과 의식 변화 등 우리 사회의 중ㆍ장기적 과제와 연결된 거대 의제들이다. 미소금융처럼 기업과 은행권의 선의에 떠맡기거나 취업후 상환 등록금처럼 후대에 부담을 미루고 정부가 생색을 낼 일이 아니다.
내년이면 집권 후반기에 접어드는 정부의 다급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는 계산서가 전혀 없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전형적으로 인기를 좇는 사업들이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CEO정권이라 해도 계산서가 빠진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적처럼 '공언무시(空言無施)'가 되기 십상이고 실용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세종시 문제에 엄격한 비용 잣대를 들이대며 백년대계를 말하는 정부라면 이런 식으로 일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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