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만남이다. 2007년 '엠'을 마지막으로 그를 애타게 기다렸던 팬(특히나 여성)들은 반가워할 만하다. 역할도 밝다. 120억원의 제작비로 빚은 '전우치'에서 강동원은 악동 기질이 가득한,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도사 전우치를 그려낸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기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이후 처음 인 듯하다. 그는 "처음으로 모든 연령층의 관객에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역할이다. 조금은 멍청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면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전우치가 되기까지 준비기간이 많았고, 촬영기간도 길었다. 3개월간 몸을 만들며 거친 액션에 대비했다. 촬영기간 8개월 동안 전국을 떠돌며 원없이 전우치가 되어 놀았다. 그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출연 제의를 받아 요리저리 생각도 많이 해서 캐릭터가 더 단단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예전 역할은 '아 어렵겠다' 생각도 했는데, 전우치는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맡았고 현장도 무척 즐거웠다"고도 했다.
강동원은 '전우치'에서 소문난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과시한다. 패션모델처럼 화사한 옷으로 치장한 그의 모습에 여성들의 눈이 즐거울 듯하다. 그는 "내 경쟁력이라는 생각에 패션 공부도 많이 했지만 요즘은 가구나 인테리어 쪽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가 된 그의 남달랐던 고향집 모습도 우연이 아닌 듯했다.
"출연이 너무 뜸한 것 아니냐"고 묻자 "데뷔 7년밖에 안 됐는데 그 동안 영화를 11편이나 했다"며 바로 반박했다. "쉰 적은 '엠'을 마치고 고작 6개월 가량인데 '은둔 생활한다' '편한 일만 하려 한다'는 말이 나와 좀 억울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2년 가까이 '전우치'에 공을 들였으니 '신비주의를 조장한다'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 "20대를 돌아보면 일밖에 없어요. 그런데 '띄엄띄엄 일하고 광고만 찍는 배우' 이런 식의 기사가 나오니 살짝 화가 나기도 하더라고요. '전우치' 촬영 때문에 한참 산 속에서 와이어에 매달려 살이 쪽쪽 빠지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상복이 유난히 없는 배우 중 하나지만 그는 "상 욕심은 정말 없다"고 했다. "레드 카펫 밟고 시상대 올라가기가 정말 싫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그는 "사람들 많은 곳은 딱 질색"이라며 '칸국제영화제'라는 단어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제가 연기에 스스로 만족할 때가 정말 좋아요. 상을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저는 그저 제가 출연한 작품이 작품상 받고 감독상을 수상하면 좋을 뿐이에요."
상 대신 연기 욕심을 드러낸 그는 자신의 전우치 연기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비쳤다. "캐릭터의 느낌은 원하는 만큼 살린 듯한데 연기의 리듬감이 좀 떨어진 듯하다"고 했다. "비슷한 캐릭터는 싫어도 같은 캐릭터는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전우치' 속편 출연에 대한 강한 의욕도 나타냈다.
데뷔 초기 두 편의 TV드라마를 제외하면 강동원은 여의도를 멀리하고 있다. 그는 "영화가 좋고 영화 현장이 좋다"고 했다. "드라마는 준비 기간도 짧고 장르와 표현의 한계가 있다. 영화로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다."
그는 벌써 차기작 '의형제' 촬영을 다 마쳤다. '영화는 영화다'(2008)로 존재감을 알린 신예 장훈 감독의 이 영화에서 그는 남쪽 국가정보원 요원(송강호)과 맞서는 남파공작원 역할을 한다. 그는 "어둡지만 속 정은 깊은 배역"이라고 소개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내년 3월에는 다음 작품 촬영에 들어간다"고도 했다. "저는 자기만족밖에 몰라요. 제가 좋아하는 게 최고잖아요. 연기 변신?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 그 애 정말 열심히 연기했구나' 하며 좋은 평가를 내려주시겠죠."
■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최동훈 감독은 충무로의 탁월한 이야기꾼 중 한 명이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근사한 범죄물 연출이 이 땅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타짜'(2006)는 그가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국내 정상급 감독임을 증명했다. 그의 무기는 찰진 대사와 편집의 리듬감, 유머로 뭉쳐진 재치다.
최 감독의 신작 '전우치'는 시대를 오가는 코믹 액션이다. 도사, 신선, 요괴들의 대결을 다루다 보니 전작보다 컴퓨터그래픽에 의지를 많이 했다. 그래서일까, "부적 떼고 한 판 붙어" 등 웃음기 넘치는 대사와 편집의 리듬감은 변함없지만 최동훈이라는 인장은 흐려 보인다. CG는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배우들이 치고 받는 대사의 아날로그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많은 등장인물, 현실을 넘어선 설정 때문인지 전개도 다소 산만해 보인다.
그러나 최 감독의 재치 넘치는 화법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웃기고 궁금하게 하면서 허를 찌른다. 강동원의 외모와 연기는 최근 출연작 중 유난히 눈에 띄고, 김윤석과 유해진의 역할도 무난하다. 수다스러운 세 신선 역을 각각 맡은 송영창, 주진모, 김상호는 감칠맛을 더한다. 최동훈이라는 이름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앞서지 않는다면 연말에 흔쾌히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다. 충무로에선 드물게 시리즈 제작이 기대될 만큼 전우치라는 캐릭터와 주변 인물은 매력적이다.
영화는 500년 전 조선시대에서 시작된다. 요괴를 잡을 정도로 탁월한 도술을 지닌 도사 전우치(강동원)는 자기 재주만 믿고 임금까지 희롱한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도사인 스승 천관대사(백윤식)가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을 노린 도사 화담(김윤석)에게 살해당하면서 전우치는 곤경에 처한다. 살인 누명을 쓴 그는 자신을 따르는 개 초랭이(유해진)와 함께 세 신선에 의해 그림 족자에 갇힌다. 그리고 2009년 서울에 요괴들이 나타나자 신선들은 세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전우치를 풀어주고, 그의 천방지축 활약상이 재개되며 복수극이 펼쳐진다. 23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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