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들 펀드런… 외국인 주머니만 두둑
"환매하는 투자자를 보면, 귀한 재산을 외국인에게 바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펀드환매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10월, 금융투자업계에서 자수성가한 대표적 인물인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가 한 얘기다.
그의 지적대로 올해 외국인은 31조원(16일 현재)을 순매수한 반면,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투신권은 21조원을 팔 수 밖에 없었다. 2009년 외국인이 얻은 89조원 평가차익 중 3분의2가 '펀드는 보기도 싫다'고 내던진 소액투자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다.
'19.1%와 -19.9%.'
2007년 11월 설정 당시 돌풍을 일으켰으나, 이후 원성의 대상이 된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 수익률(7일 기준)이다. 대부분 '-19.9%는 알겠지만, 19.1% 수익률은 또 뭐냐'고 생각할 터. 전자(-19.1%)는 누적 수익률이고, 후자(19/1%)는 최초 설정 이후 매월 1일 적립식으로 투자했을 경우이다.
'장기-분산'이라는 펀드 투자의 원칙만 지켰다면 '쪽박 펀드'로 전락한 이 펀드에서도 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2009년은 펀드 업계에게 '불신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주가 급등에도 불구, 올 2분기 이후 시작된 환매사태로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14일 현재)이 1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혼합형(8조7,000억원 유출)과 파생상품(6조5,000억원) 관련 펀드까지 감안하면 전체 유출액은 2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례없는 펀드 환매의 직접적 배경은 금융위기이지만, 전문가들은 "업계의 모순에 따른 예고된 사태"라는 입장이다. 금융투자협회 최봉환 자율규제본부장은 "소규모 자투리 펀드의 난립, 펀드매니저의 불성실한 운용 등 구조적 문제와 그에 따른 신뢰추락이 환매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함량 미달의 매니저가 너무 많은 펀드를 부실하게 관리하는데도, 수수료는 높은 상황.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펀드는 9,024개(10월말 기준)에 달하지만, 100억원 미만의 소액ㆍ자투리펀드가 64%(5,776개)에 달한다.
반면 주식형 펀드 가운데 1조원 이상 펀드는 32개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자투리 펀드의 난립으로 펀드 매니저 1명이 관리하는 펀드가 8개에 달해 체계적 관리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펀드 매니저의 철새 습성도 문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올 9월까지 매니저 이직률은 48.4%로, 3년간 2명중 1명이 이직했다.
최 본부장은 "펀드매니저가 바뀌면 해당 펀드 운용전략도 바뀌게 된다"며 "투자자에게는 장기투자를 권유하면서, 정작 운용사는 단기 관점에서 투자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당국의 인하 노력에도 불구, 올 들어 수수료(3월 1.113% → 10월 1.323%)가 높아지는 등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묻지마' 투자를 감행했던 고객도 사태의 한 당사자다. 한 증권사 지점장은 "활황 때에는 장기ㆍ분산 투자를 강조해도 '몰빵'에만 관심이 있고 폭락 장세에서는 아무리 말려도 무조건 환매하라는 분들이 많다"며 "건전한 투자문화 정립을 위한 투자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2009년 사태는 장기적으로는 펀드업계의 구조조정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최 본부장은 "최근 환매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등 펀드투자 성격에 맞지 않는 단기 자금은 대부분 빠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펀드 매니저 이력 공개와 소액펀드 강제 통폐합 등 보완대책이 예정대로 내년 2월부터 실시된다면 급락했던 투자자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 전문가제언 "장기투자자 수수료 내리고 대형운용사 해외투자 편중 시정을"
"펀드산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우선 투자자 신뢰확보를 위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투자설명서나 운용보고서를 '투자자 친화적'으로 작성해야 하며, 장기투자자에 대한 보수ㆍ수수료는 낮춰주는 장기이연판매보수제(CDSC)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
자산운용사는 펀드규모를 적정화해 펀드매니저 1인당 운용펀드수를 낮추는 한편, 펀드매니저의 전문 운용능력을 확충하고 윤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대형 운용사는 중국 등 특정지역에 편중된 해외투자를 글로벌 분산투자로 전환해 '한국판 피델리티'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소형 운용사는 특성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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