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올해 판매한 가장 짧은 미니스커트 길이는 23cm였다. 자로 재어 보면 성인남성 손바닥 한 뼘 정도다. '초미니'를 지나 '나노(nano) 미니'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니스커트는 몇 년 전만 해도 늘씬한 20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몸매와 연령, 계절을 초월해 대중적인 옷으로 자리잡았다. 여고생은 물론 30~40대 여성들도 허벅지를 드러내는 노출 패션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 인터넷 의류사이트에서 판매된 여성 의류의 30%가 미니스커트였다는 통계도 있다.
▦ 치마 속에 숨겨져 있던 여성의 다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불과 80여년 전이다. 다리는 옛날부터 성적(性的) 이미지와 결부된 신체 부위였다. 서양인들은 여성이 발목만 보여도 정숙하지 않다고 여겼고, 심지어 피아노 다리가 음심(淫心)을 유발한다며 천으로 감쌀 정도였다. 다리 선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20세기 초까지 여성들의 바지 착용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샤넬은 1920년대 발목을 덮고 있던 치마 길이를 종아리까지 올렸고, 영국의 메리 퀀트는 64년 무릎 위까지 드러낸 미니스커트를 선보여 '도덕성을 잘라낸 옷'이라는 혹평을 샀다.
▦ 여성들이 미니스커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리가 길어 보이고, 몸매가 예뻐 보여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다. 전문가들은 몸매 과시 욕망에다 젊어 보이고 싶은 트렌드가 맞물렸다고 분석한다. 불황일수록 여성들의 생존 본능이 작동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느라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호황이던 60년대에 미니스커트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오일쇼크가 닥쳤던 70년대에는 긴 치마가 인기를 끌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속설일 따름이다.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계절 구분이 무의미해지면서 노출 패션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 패션의 역사에서 여성의 노출을 둘러싼 논란은 끝없이 되풀이돼 왔다. 18세기 실학자 이덕무는 당시 유행하던 여성들의 미니 저고리에 대해 "어찌 그리도 요망스런 옷일까"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저고리 길이와 소매 폭은 계속 짧아져 19세기에는 가슴 가리개를 따로 둘러야 했다. 67년 미국에서 돌아온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처음 소개했을 때도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하지만 경찰의 풍기문란 단속에도 불구하고 도심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넘쳐났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의 관념도 예뻐 보이려는 여성들의 원초적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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