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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소스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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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소스라치다

입력
2009.12.1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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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다 로드킬의 흔적을 보았다. 로드킬이란 도로에 나온 동물이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이 좀 지난 듯 아스팔트에 스며든 얼룩은 색 바랜 자줏빛이다. 얼룩이 점점, 멀리까지 퍼져 있다. 그 크기로 사고를 당했을 동물의 크기도 짐작해본다. 서식지나 먹이를 찾아 길을 건너던 노루나 고라니였을까.

아니 그보다 훨씬 큰 멧돼지인 듯하다. 느닷없이 나타난 동물에 놀랐을 운전자도 떠오른다.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뒤로 목적지의 위치는 물론 고속도로 제한속도와 더불어 종종 야생동물 주의 안내를 듣게 된다. 주로 산을 관통한 도로 위에서다. 동물들이 건널 생태도로 하나 없는 곳일 때가 많다. 길을 건너던 멧돼지 가족과 부딪혀 사망 사고로 이어진 소식을 들은 뒤로는 조심조심 길을 달린다. 어두운 밤길 산길 한가운데에서 고라니와 마주친 적이 있다.

급브레이크를 밟고서도 한동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나보다 더 놀란 건 고라니인 듯했다. 얼음땡처럼 굳은 고라니는 가볍게 몇 번 경적을 울리자 후드득 정신을 차리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함민복 시인의 시 '소스라치다'가 떠오른다.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란 건 지상의 모든 생명과 무생물들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처럼 산산히 흩어진 자줏빛 얼룩.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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