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해 검찰이 체포영장 청구라는 강수를 띄운 데에는 무엇보다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통운 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달 곽영욱 전 사장으로부터 "참여정부의 실세 3명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던 곽 전 사장은 도중에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한 전 총리에게 2007년 초 공기업 사장에 선임되도록 도와달라며 총리 공관에서 5만 달러를 줬다"고 실토했다. 검찰은 당시 곽 전 사장과 함께 총리 공관에 동행했던 이들도 불러 곽 전 사장 진술의 진위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단돈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을 비롯, 관련자들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혐의 입증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총리 공관 방문자 기록이나 폐쇄회로(CC)TV 화면 등 진술 이외의 객관적 물증을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뇌물 사건의 경우 공여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높으면 유죄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전 총리가 지난 11일과 14일 출석 통보를 모두 거부하면서 공개적으로 소환 거부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더 이상의 출석 요구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강제수사 수순에 돌입하는 계기가 됐다. 검찰로선 '명분 쌓기'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검찰은 실제로 14일 한 전 총리가 2차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자 "더 이상 소환 통보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며 체포영장 청구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쳤다.
이후 15, 16일 이틀간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피의자 조사 없이 바로 불구속 기소하자는 신중론이 검찰 내부에서 제기됐으나, 그럴 경우 오히려 검찰이 수사의 원칙을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통상적 절차를 택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피의자 조사도 없이 기소해 버릴 경우 소환을 거부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한 전 총리 신병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한 전 총리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이로 인해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경우 '야당 탄압'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극심한 마찰을 빚기 보다는 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당분간 한 전 총리의 자진 출석을 유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마디로 한 전 총리에게 보내는 '최후 통첩'의 의미인 셈이다.
실제로 한 전 총리 측이 검찰의 의도대로 자진 출석을 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측도 검찰의 영장집행에 물리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의 출석 요구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어서 거부할 수 있지만,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할 경우 공권력에 대한 불법적 대응으로 비쳐 여론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를 '불법 행위'로 간주하고 비판한 한 전 총리 측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 전 총리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이날 영장 발부 소식을 접한 뒤 "강제 구인한다면 응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측은 검찰 출석 때 '민감한 발언'을 하겠다고 밝혀 양측의 합법적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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