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관하는 사업에 참여시켜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뇌물을 전달한 사람은 검찰이 잘못된 법률 적용을 고수하는 바람에 무죄가 선고됐다. 또 함께 돈을 건넨 사람은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는 코스닥 상장업체 M사가 정부사업의 주관업체로 선정되도록 힘써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소속 김모 연구원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그러나 M사의 소유주인 A씨의 부탁을 받고 김씨에게 돈을 전달한 혐의(제3자뇌물취득)등으로 기소된 지방 H대 교수 유모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돈을 받은 김씨는 자백과 은행 입출금내역 등 증거가 충분해 범죄가 입증된 것과 달리, 유씨의 경우 검찰의 법 적용이 잘못돼 처벌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김씨가 받은 금액 6,000만원 중 4,000만원은 2006년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유씨가 동석한 상태에서 현금으로 A씨가 직접 전달했다. 이 자리는 유씨가 주선해서 이뤄졌다. 하지만 나머지 2,000만원은 출처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한 A씨는 "사채업자로부터 2,000만원권 수표를 받아 유씨를 통해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하지만, 유씨는 "A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은 없고, 채권채무 관계로 인해 내 돈을 A씨 친구에게 송금했다가 다시 현금으로 받은 적은 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뇌물공여죄 공범으로 책임을 져야 할 위험이 있음에도 이 같이 진술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처음 4,000만원은 김씨의 요구대로 현금으로 전달하고 나머지는 이례적으로 수표로 줬다고 한 점이나, 유씨에게 받을 돈이 있는데도 사채업자한테까지 돈을 빌려 김씨에게 전달하려고 했다는 주장 등이 석연치 않다"며 A씨의 진술을 배척하고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3자뇌물취득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김씨에게 간 돈이 유씨의 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돈이라는 사실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 점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법정 진술을 토대로 유씨의 경우 제3자뇌물취득죄가 아닌 뇌물공여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재판과정에서 두 차례나 언급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모두 거절했고, 재판부는 이 사실을 재판기록에 기재하기도 했다. 결국 금품을 받은 사람만 처벌을 받고, 금품을 건넨 사람은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검찰은 사실관계를 재판부와 다르게 파악하고 있고,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을 시사한다고 해서 검찰이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돈을 직접 건넨 A씨가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A씨는 이미 다른 죄로 오랜 기간 수감 중이라 기소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석연찮은 해명을 했다.
권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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