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감성코드 딱이네" 한국소설에 푹 빠진 충무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감성코드 딱이네" 한국소설에 푹 빠진 충무로

입력
2009.12.16 00:50
0 0

작가 공지영씨의 장편소설 <도가니> 는 최근 한 연예기획사와 영화판권 계약을 맺었다. 판권료는 1억원 이상인 것으로 충무로에 알려졌다. 공씨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특급 대우를 받아오긴 했지만 최근 불황에 시달리는 충무로 현실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한 영화인은 "작가의 대중적 인기와 좋은 소재를 찾으려는 영화계의 욕구가 빚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충무로가 한국소설과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 그간 일본소설만 편애하는 듯하던 영화제작자들이 눈을 돌려 한국소설에서 이야기의 매력을 찾고 있다.

충무로에 흐르던 '日流'

바로 최근까지도 충무로는 일본소설에 한없이 경도돼 있었다. 영화사 사무실마다 일본소설 읽기 바람이 불었고, 그 열기는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판권 확보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판권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화화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일단 판권부터 사놓고 보자는 입도선매 심리까지 발동했다.

'한류의 전진기지인 충무로엔 일류(日流)가 흐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개봉 중인 '백야행'을 비롯해 '어깨 너머의 연인' '플라이 대디' '검은 집' '아주 특별한 손님' '멋진 하루' 등 일본소설에 기댄 충무로의 생산물은 목록을 들먹이기도 벅찰 정도다.

반면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은 충무로에서 홀대를 면치 못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오래된 정원' '밀양' '천년학'(이상 2007) 등이 명맥을 이어갔다.

토종의 반격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모던보이'와 '아내가 결혼했다'가 개봉한 데 이어 유명 작가는 물론 젊은 신진 작가의 작품도 영화화의 밀물을 타고 있다. 소설가 고 이청준의 동명 단편소설을 옮긴 '나는 행복합니다', 오정희씨의 동명 단편을 바탕으로 한 '저녁의 게임'이 지난달 극장을 찾은 데 이어, 젊은 작가 이홍씨의 동명 소설을 밑그림 삼은 '걸프렌즈'가 17일 개봉한다.

올해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씨 원작의 영화 '내 심장을 쏴라', 박민규씨 원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내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려령씨의 청소년소설 <완득이> , 구병모씨의 판타지 성장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 김영하씨의 장편 <퀴즈쇼> 도 판권 계약을 마쳤다.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저력

충무로의 한국소설에 대한 애정 공세는 우선 한국소설의 변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1970년대생 작가들이 발랄하고 발칙하기까지 한 내용을 담은 소설을 잇따라 내놓으며 영화계가 그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오민호 감독은 "영화의 주요 타깃인 20~30대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섬세한 감성의 소설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 소설은 그간 한국영화가 미처 다루지 못한 결혼, 욕망 등 개인의 미시적 영역에주목하면서 영화계의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문학평론가 신수정 명지대 교수는 "최근 한국소설의 내용이 영화적 상상력보다 훨씬 더 정밀해지고 있다"며 "영상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게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도 "젊은 작가들은 대중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며 "이들에 의해 영화화가 쉬운 장편소설의 창작이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일본소설을 근간으로 한 영화의 실패가 부른 반작용도 원인의 하나다. 141만명을 동원한 '검은 집'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소설 원작 영화는 관객의 큰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한 영화인은 "일본소설은 문체가 매끈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지만 드라마틱하지 않다"며 "장르소설을 제외하면 흥행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로 회귀하고 싶은 영화팬들의 욕구가 발동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외국 소설이 아무리 근사한 이야기틀을 지녔어도 우리의 정서와 감정을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한국소설의 정서는 뭐라 해도 우리것 아니냐"며 "최근 장르소설에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들이 많이 등장한 점도 한국소설 영화화 붐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