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선풍기에서 나오는 약풍 혹은 미풍이란 글자
처음 사랑의 편지 받았던 촉감일 때 있다
크게 속상하고 지친 울음 거두고 마악 여는 문
경첩에서 흰 바다 갈매기들 바닷물 닿을 듯 낮게
마중 나올 때 있다
극도로 줄이거나 높인 음악 소리 속
가본 기억 없는 모로코사막의 터번 두른 낙타
눈 아픈 모래바람 앞서 가려줄 때 있다
유리창 너머 시원한 액자 속 흰 양떼구름들
살아 움직이는 활동사진처럼
갈래머리 계집아이의 어린 설레임 되감아줄 때 있다
어떤 여름 저녁,
그 모든 것들 한꺼번에 밀려나와
더위보다 큰 녹색 수박의 무수한 조각배들
잊을 수 없는
석양의 출항을 시작할 때가 있다
● 연남동 근처의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면사무소'라는 이름의 식당을 봤어요. 갑자기 읍내에 나온 듯한 그 느낌을 아시려나? 우린 좀 놀아봐야겠습니다. 뭐, 그런 각오랄까요. 그래서 그 식당에 들어갔어요. 창밖으로는 바람이 부는 초겨울의 밤, 페인트를 칠한 나무탁자 위에는 잡채계란말이와 서울장수막걸리. 거기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이 친구는 창가에 앉은 우리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갔네요. 제목이 '면사무소'라면 당연히 창 안을 들여다봐야만 할 것 아니야? 거긴 국수집이잖아요. 그제야 나는 그 집이 국수를 파는 집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암튼 그렇다니까요. 자리에 앉아서 술 마신 뒤에야 술집 이름의 뜻을 알게 되는 밤도 있다니까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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