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지도자 가운데 선두주자인 시진핑(56) 국가 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2012년 중국 최고 지도자 승계를 다투는 6명의 '비상하는 용'들을 차례로 짚어본다.
시진핑 부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를 이을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하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아직 없다.
후 주석이 돌발사건에 강한 '정치형 지도자'라면 시 부주석은 준비와 계획에 강한 '경제형 리더'로 통한다. 그는 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구동존이(求同存異ㆍ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 정신을 발휘해 우선 의견이 일치한 것부터 조속한 시일 내에 착수해 진행하기를 바란다"고 말할 만큼 실용적 가치관의 소유자다.
2007년 10월 열린 17기 1중전회에서 권력서열 6위로 올라선 시 부주석은 2008년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정부 2인자인 국가 부주석에 발탁돼 차세대 지도자의 입지를 다졌다.
공산당 혁명원로로서 국무원 부총리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부친 시중쉰(習仲勛)의 영향으로 일찍이 공산당에 입당했다. 고급간부의 자제들인 '태자당'으로 분류되지만 부친이 문혁을 전후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7년간 농촌에서 살아야 했다.
고초를 겪으며 그는'자부심을 갖되 자만하지 말자. 의욕을 갖되 떠벌리지 말자. 일에 힘쓰되 경솔하지 말자'는 좌우명을 갖게 됐다. 이 좌우명은 결국 최고 지도자로 최종 결정되는 2012년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전대)에 까지 그가 가져가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시 부주석은 문혁 이후 칭화(淸華)대 화공과에 다녔지만 법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는 푸젠(福建)ㆍ저장(浙江)성, 상하이(上海) 등 지방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착실히 일선 경험을 쌓아 중앙 정계로 약진하는 밑거름을 삼았다.
성장론자인 그는 푸젠 성장 당시 '전략경영의 전도사'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경제구조를 조정하고 종합경제력을 높여 푸젠성 GDP를 전국 10위로 끌어올렸다.
2006년 장쩌민 전 주석의 측근인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 서기가 수뢰사건에 연루됐을 때 후임서기를 맡아 포용과 신뢰로 조직을 큰 동요 없이 이끈 것이 당 원로들의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됐다.
상대적으로 국제감각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지만 시 부주석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올들어 유럽에서부터 아시아까지 외교활동의 보폭을 늘리고 있다.
베이징=장학만 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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