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어의 너머에 있다고 주장하는 연극들이 있다. 이미지나 몸짓으로, 그들은 언어도단 이후를 보여준다.
김아라 표 무대가 갖는 최대의 난점은 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극촌 죽산캠프에서 2002년 공연했던 복합 장르적 퍼포먼스 '햄릿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당시 팬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때아닌 잔치판까지 펼쳤던 그의 극단 무천이 침묵극 '바람의 정거장'을 공연한다.
전체가 모래로 뒤덮이고 그 위에는 밥상, 재봉틀, 요강, 가방 등이 흩어져 있다. 둘레에는 파이프가 얼기설기 놓인다. 관객은 무대 위로 올라와 기꺼이 오브제가 돼야 한다. '침묵극'이라 이름한 무대의 풍경이다. '남자ㆍ여자 a, b, c, d' 혹은 '죽은 자들' 등으로만 구분되는 등장인물들에게는 머물렀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만 부여된다.
연출가 김아라, 무대미술가 박동우, 설치작가 김광우, 영상아티스트 최종범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의욕적 현역들이 힘을 합친 무대다. '햄릿 프로젝트'는 이 무대의 시발점이었고, 2007년 펼쳤던 '물의 정거장'으로 이 극단의 침묵극은 본격 출발했다.
숱한 남녀의 덧없는 만남과 이별을 배우들의 눈짓과 몸짓으로 보여주는 이 극의 결론은 식욕과 성욕이다. 대본은 예를 들어 "구멍 속의 남자b, 여자b의 볼을 핥는다"라며 이들이 무언으로 나누는 관계의 양상을 지시한다. 맨 마지막, 두 명의 여자만이 남아 죽은 자들의 한가운데서 게걸스레 먹는다. 연출가는 "배우의 대사에 집중하던 감상 관행을 벗어나 하나의 미술품 혹은 음악작품을 즐기듯 하라"고 일러주었다. 16~2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수~금 오후 4시 8시, 토ㆍ일 3시 7시. 070-7501-0001
극단 노는이는 '기묘한가(家)?'에 '복합 미디어극'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족과, 그들을 괴물이라 부르며 무턱대고 쫓아내려는 마을 사람들이라는 대립 구도에 탈옥수와 형사를 끼워넣어 우리 사회의 집단이기주의를 풍자한다. 영화 '왕의 남자' 촬영팀 등 현직 영화팀이 미리 제작해 둔 영상과 배우들의 공연이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17일부터 내년 1월 24일까지, 대학로 라이프씨어터. 화~금 오후 8시, 토ㆍ일 3시 7시. (02)742-3577
한편 극단 서울공장은 대표작 '두 메데아'의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전, 국내 무대를 갖는다. 2007년 제19회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이 작품은 박윤초 김민정 등 기성 국악인들이 출연해 판소리와 정가를 들려주는 등 한국 고유의 미학을 구현, 희랍 비극의 새 경지를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내년 1월 7~24일 미국의 실험연극을 상징하는 라마마 극장에 초청받아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별도 매표소를 설치하는 장기공연물이라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한 시험적 무대의 의미가 큰 이번 공연은 13~27일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다. 화~금 오후 8시, 토 4시 7시, 일 3시. (02)923-1810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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