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파업에 맞서 국책 연구기관 사상 처음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이 14일 사퇴했다. 노조는 박 원장의 사퇴 사실이 알려진 직후 파업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9월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에 반발해 시작된 노조의 파업은 85일 만에 종료돼 정상화가 가능하게 됐다.
85일만에 파업 철회
연구원 노조는 이날 오후 총회를 열어 파업 중단과 함께 15일 오전 9시 업무 복귀를 결정했다. 노조는 파업철회 성명서에서 "조합원들의 소중한 일터를 지키고 국책 연구기관을 국민의 연구기관으로 만들기 위한 고심어린 결단"이라며 "이 같은 대승적 결정을 정부와 사용자도 수용해 연구원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10일 박 원장이 상급기관인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사표를 제출했고, 이날 오전 연구회가 이사회를 열어 박 원장 사임 건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장 사임 소식이 전해진 뒤 노조는 긴급 총회를 열어 파업철회를 전격 선언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박 원장이 욕을 많이 먹었지만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앞장서 추진한 점은 인정받았다"며 "연구원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야당 등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전했다.
연구원의 노사갈등은 2월 박 원장이 "사측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단체협약 해지를 노조에 통보하면서 불거졌다. 박 원장은 이후 비정규직보호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연구활동에 간섭하고 연구원들의 외부기고 등을 제한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특히 박 원장은 9월 국회에 출석해 "개헌을 하면 노동3권을 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고, 이에 반발한 박사급 연구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노사는 이후 집중교섭을 벌이면서 협상 타결이 한때 점쳐지기도 했으나, 1일 사측이 돌연 직장을 폐쇄하면서 다시 정면대결 양상으로 악화했다.
완전 정상화까지는 시간 걸릴 듯
이날 노조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는 박 원장이 사퇴하면서 파업철회의 명분을 일단 갖췄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노동계 주변에서는 "파업 장기화에 따른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8일 노동관련 학회장 10명이 연구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임태희 노동부 장관도 연구부실에 따른 문제를 거론하는 등 노조를 겨냥한 외부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정부 내에서 연구원 폐지 논의가 흘러나오면서 노조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연구원이 앞으로 살아남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정부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원장의 사퇴와 이에 따른 노조의 파업철회로 연구원은 외형적으론 예전의 모습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장 정상화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11일 노조원 51명을 업무방해 및 퇴거불응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연구원측도 이날 노조원 37명을 같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사측 관계자는 "고소ㆍ고발 건도 그렇지만 파업의 쟁점이었던 단체협약 문제도 언제 협상 테이블에서 다시 논의할지 미지수"라고 말해 완전 정상화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김광수 기자 rollin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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