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에서 '렌트'가 초연되던 10여년 전만 해도 충격적인 소재였던 동성애가 이제 국내 뮤지컬에서도 흔한 것이 됐다. 연말 뮤지컬 중에도 감초 역할을 하는 게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단순히 웃음의 장치로만 활용한다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요즘 이 독특한 캐릭터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소화해 주연 못지않은 박수를 받는 '금발이 너무해'의 임기홍(34), '웨딩싱어'의 박정표(29),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김동현(29)을 만나 게이 연기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동성애 인식 폭 넓어진 듯"
'금발이 너무해'에서 게이 발레리노의 남자친구, 금발 엘 우즈의 아빠, 아랍왕자, 주정뱅이 듀이 등 개성 뚜렷한 네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는 임기홍은 "게이 역에 선뜻 응했다"며 빙글빙글 웃었다. 그는 "게이로 등장해도 관객들은 거부감 없이 즐기더라. 최소한 무대에서는 동성애 코드가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서 그는 몸에 딱 붙는 민망한 타이즈를 신고 파트너와 함께 2인무를 추고, 트레이닝복을 가슴까지 올려가며 폭소를 자아낸다. 실제로도 장난기 가득한 그는 "두려운 역할은 없다. 계산 없이 그 사람이 될 뿐"이라고 했다.
그는 2001년 뮤지컬 '홍가와리'로 데뷔한 후 줄곧 감초 조연 역을 맡았다. '내 마음의 풍금'의 바보 역, '달고나'의 룸펜 삼촌 역, '김종욱찾기'의 1인 22역 멀티맨까지. '금발이 너무해'의 게이 역할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 상에 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배우 전수경이 "연기 참 잘한다. 이제 뜰 때도 됐다"고 인터뷰를 거들자 그가 말했다. "조연이라 섭섭한 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여배우와 키스신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웃음)
"또 다른 내 모습 보여줄 뿐"
'웨딩싱어'에서 1980년대 가수 보이 조지에 열광하는 게이 조지 역을 맡은 박정표. 그는 "동성애를 이해하지만 동감은 못한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내 안의 여성성을 드러내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짙은 눈썹에 수염까지. 겉으로 보는 그는 게이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디션 때 스태프로부터 "왜 남자 주인공 역에 응시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조지 역할을 맡으면서도 그는 고민이 많았다. "'빨래' 때는 몽골어를, '김종욱찾기' 멀티맨 때는 강원도 방언을 녹음해서 들었는데 게이는 마땅한 표본이 없었어요. 타이트한 옷이 흉하게 보일까 체중을 관리하고 네일아트를 하는 정도였죠. 단지 과도한 설정으로 혐오감을 주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을 웃기는 것도 제것이 아니면 재미없으니까요." 그 결과 주위에서는 '박정표의 본 모습이 무대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관객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개그와 코미디를 구분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코미디를 보러 와서 개인기에 치중한 개그를 기대하니, 역할을 진지하게 준비한 배우로서 힘이 빠져요. 조금 더 진지하게 봐주세요."
"이해 없이 웃음만 있어 아쉬워"
청소년의 성적 고민을 다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앞의 두 작품보다 진중하다. 애정 표현 수위도 높다. 양성애자 한센 역을 맡은 김동현은 김하늘과의 키스신에 대해 "처음 연기할 땐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제는 농익은 수준"이라며 웃었다.
"상대 배우와 입맞춤으로 첫 인사를 했어요. 성을 굳이 떠올리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최면을 걸었죠." 2006년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보고 반했다는 그는 무대 가운데 홀로 앉아 자위하는 장면까지 연출해야 하는 이 역할을 주저없이 맡았다.
그는 "관객들이 괴성을 지르고 웃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일부러 더 느끼하게 연기한다"고 말했다. 분명 한센은 어두운 작품 속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이지만, 김동현은 "관객들이 한센의 내면에 서린 슬픔과 아픔도 알아챌 수 있도록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파이란'의 멀티맨에 이어 다시 동성애 연기를 하게 된 그는 "국내서는 동성애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장치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며 "제작자나 관객 모두 마인드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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