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부터 정부 부처별 새해 업무보고가 시작됐다. 국회가 예산안을 처리하기 전에 예산안과 연관된 정부의 새해 업무보고가 개시되는 것은 이례적이어서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이상 현상'을 둘러싸고 국회와 행정부 양측을 비판하는 지적들이 있다. 먼저 헌법상 예산안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긴 국회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새해 업무보고는 사실상 정부 제출 예산안의 통과를 전제하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업무보고가 국회의 예산안 심의ㆍ의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각 부처 새해 업무보고를 12월 중에 마치기로 했다. 지난해 금융위기 한파를 맞아 통상 1,2월에 진행되던 새해 업무보고를 12월로 앞당겼던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에도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비상경제체제를 내년 6월까지로 연장한 만큼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연초부터 재정을 조기 투입해 경기부양 효과를 높인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에는 12월 13일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각 부처는 12월 18일부터 정상적인 업무보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산안 심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터라 부처 장관들은 '예산안이 통과되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보고해야 한다.
이는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에 대한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처 업무보고가 정부 제출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전제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가 개별 업무의 타당성과 예산 규모의 적절성 등을 판단할 여지를 좁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예산안이 확정되기 전에 정부가 예산 내역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간 예산안 논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추진, 미디어법 후속 조치, 아프가니스탄 파병, 복수노조 및 전임자 임금 문제 등과 관련한 정부 방침이 확정된 것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일찍 받고자 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부가 국회를 무시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여야가 4대강 예산 등을 두고 힘겨루기를 계속하면서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또 아직도 예산안계수조정소위를 구성하지 못하는 등 전체적으로 예산안 심의 속도가 어느 해보다도 느리다. 정치권 스스로가 국회의 권능을 깎아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국회가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 주장하고 있다.
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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