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가 사망한 뒤 형부와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처제에게도 형부의 공무원 연금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있던 A(여)씨는 1992년 언니가 세상을 뜨자 국립대 교수이던 형부 B(사망)씨의 집에 드나들면서 형부와 조카들의 살림을 도와줬다. 그러다 두 사람은 가족처럼 한집에 살게 됐고, 급기야 정이 들어 95년부터 부부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은 근친혼을 금지하는 민법 규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는 못했지만 실제 부부처럼 살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B씨의 자녀와 친척까지도 두 사람의 부부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이들의 '금지된 사랑'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냈으나, 끝내 법적인 문제에서 발목이 잡혔다. B씨가 2003년 은퇴한 뒤 두 사람은 공무원 퇴직연금으로 생활해 왔는데, 올해 1월 B씨가 사망하면서 법적 배우자가 아닌 A씨는 연금을 승계하지 못할 상황을 맞았다.
A씨는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므로 연금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연금 지급을 요구했으나, 공단은 "법이 금지하는 인척 간 사실혼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성지용)는 A씨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연금승계불승인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14년 동안 부부 공동생활이라고 할 정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으므로 B씨를 사실상의 배우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며 "유족연금제도의 사회보장적 성격에 비춰 유족연금의 배우자는 민법상 배우자 개념과 반드시 같게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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