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원자재인 고철 값이 자고 나면 오르고...'이렇게 망하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경기 평택시에서 20년째 주물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 사장은 지난 2년간 몸서리쳤던 일이 아직 생생하다. 최 사장의 공장은 고철을 원료로 자동차와 선박 엔진 부품을 만드는 곳.
주물공장의 특성상 원자재인 고철의 가격, 대기업과의 제품 가격 협상에 따라 한 해 사업결과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07년 1㎏당 280원하던 고철 값이 1년 사이 600원까지 올랐다. 이미 국내 굴지의 중공업과 선박 엔진에 들어가는 배기 밸브 부품을 톤당 125만원에 납품하기로 계약한 상태.
원가 상승으로 공장을 숨가쁘게 돌려도 결국 적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와서 계약업체에 돈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한 들,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가 요구를 들어줄 리도 만무할 터였다.
이대로 주저앉는 가 싶었던 최 사장이 실낱 같은 희망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이사장 서병문)덕분이었다.
200여 주물공장업체들의 모임인 주물공업협동조합은 1981년 설립된 이후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의 위세에 눌려 제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해오고 있다.
이런 성과로 주물공업협동조합은 14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처음 실시한 우수조합상 대상을 수상했다. 418개 조합 중 일등 조합에 선정된 것이다.
주물공업협동조합의 성공은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 덕분이다. 최 사장의 사례처럼 예기치 못한 혹은 부득이한 원가인상요인이 발생할 경우 해당업체에 납품단가 인상 요인을 합리적으로 설명,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해왔다.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대기업들도 조합의 파워에 밀려 서서히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반기술산업인 주물공업이 연쇄부도를 맞을 경우, 대기업도 결국 손해가 아니냐는 설득도 곁들여진다.
최 사장도 조합 덕분에 납품하던 업체로부터 원자재 인상분(1톤당 54만원)을 추가로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최 사장은 "이 정도 인상분으로는 부족하지만 20년 사업을 하면서 대기업이 계약한 제품 가격을 올려준 것은 처음"이라며 "조합을 중심으로 뭉쳐 일궈낸 승리"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향후 계약에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 우리 회사 이름과 해당 대기업 명은 제발 언급하지 말아 달아"는 당부도 곁들였다.
최 사장의 사례뿐이 아니다. 주물조합은 올해 초 고철가격이 1㎏당 800원까지 올라가자 한 자동차회사와 협의, 납품단가를 80원 인상키로 했다.
조합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물공업의 원부자재인 선철, 후란수지 공동구매에 나선 것. 특히 주형틀(거푸집)을 만들 때 결정체로 쓰이는 후란수지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동안 후란수지는 국내 대기업 서너곳이 원자재를 구입, 제작해 각 주물업체에 파는 방식으로 거래됐다. 공급 업체가 한정돼 있다 보니 당연히 수십년 동안 주물업체들은 가격에 불만이 누적돼 왔다.
조합은 이런 조합원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1999년부터 '해외 공동 구매'를 추진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값싼 제품을 구매했다가 자칫 납품제품의 질을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십여 개 해외업체와 접촉하고 그 제품을 시험한 끝에 2006년 처음으로 한 중국 업체로부터 후란수지를 공동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1톤당 186만원.
당시 국내 대기업이 파는 가격(톤당 240~250만원)에 비해 40%이상 싼 가격이었다. 올해도 벌써 13억원 어치를 공동구매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콧대 높던 국내 업체들도 서서히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영세한 업체를 대신해 해외 수출에도 조합이 나서고 있다. 10월에는 일본 나고야의 주물공장 단지를 찾았다. 펌프 케이싱(자동차 부품) 등 50여개 주물제품, 300만달러 어치 계약을 국내업체와 추진 중이다.
본계약이 체결될 경우, 국내 주물업계는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 해외 영업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업체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이날 우수조합상 시상식에 참가한 서병문 조합 이사장은 "조합원들이 믿고 따라 준 결과"라며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영세 중소기업의 도우미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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