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에게서 '아름답고 멋진 서울'에 대한 열망을 느꼈다. 특파원으로 뉴욕에 주재했던 2007년 5월이었다. 맨해튼의 한 한국식당에서 각 언론사 특파원들과 함께 그를 만났다. 그는 대도시기후리더십그룹정상회의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는데, 이미 그 때부터 서울을 브랜드화 하는 방안이나, 서울의 미관을 일신하는 일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런 열망의 한 갈래였을 것이다. 그가 얘기 끝에 느닷없이 "서울 도심의 각 구나 동 관할에 있는 자투리 소공원마다 미술 조각품을 설치해 생활의 여유와 문화의 향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도심 곳곳에 꾀죄죄하게 방치된 소공원들이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환하게 살아난 풍경이 떠오르기라도 하듯 흐뭇한 표정이 됐다. 하지만 좌중엔 이내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한 참석자가 어렵사리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그게,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멋진 조각품을 써서 소공원을 문화의 공간으로 일군다는 생각은 좋지만, 달랑 조각품만 들어서면 십중팔구 뻘쭘할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토사물로 범벅이 되거나 강아지들 용변소로 전락하기 십상 아닌가요?"
오 시장은 난감한 표정이 됐고, 주변에 앉은 참모들의 표정도 머쓱해졌다. 다른 참석자가 말을 보탰다.
"예산이 허락한다면 조각품 같은 것 보다는 생활 편의시설이 우선 확충됐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각급 학교에 제대로 된 육상트랙을 정비해주고 대신 주말에는 조깅코스로 주민들에게 개방토록 한다든지, 수영장이나 배드민턴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좋고요. 요컨대 '기반시설 확충'이냐 '조경'이냐의 문젠데, 아직은 생활 편의시설이 먼저 아닐까요?"
하지만 오 시장의 의지는 '서울시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이름 아래 흔들림 없이 추진됐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우려와 비판도 잇달았다.
공원 조각품 구상은 결국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 유명 조각가 10명의 대형작품을 설치하는 것으로 현실화했지만 '썰렁하다'는 반응이 잇달았다. 한강 다리엔 환상적인 야간조명이 설치됐고, 반포대교엔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인 '달빛 무지개 분수'까지 선보였지만 '배 부른 짓'이라는 냉소 또한 만만찮았다.
대학로엔 실개천이 흐르게 됐다. 그런데 통행인들의 부상 때문에 강화유리 덮개를 하기로 하면서 '탁상행정'이라는 쓴소리가 잇달았다. 급기야 광화문광장에 거대한 스노우보드가 세워지고 극심한 주말 교통체증을 무릅쓰고 스노우보드 경기가 강행되자 오 시장에 대한 비판은 '이벤트행정'에 대한 개탄으로 비화했다. 심지어 장애인 단체에서는 "17억원이나 들여 스노우보드를 설치하면서 장애인 자립기금은 10억원이나 깎으려 한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아름답고 멋진 서울'을 만드는 일은 굳이 서울을 찾는 관광객 1명의 생산유발효과가 얼마라는 식의 계산을 따질 필요조차 없이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또한 좋은 일이 이루어지려면 어느 정도 부수적 희생과 인내가 따라야 한다는 데도 동의한다.
하지만 점점 확산되고 있는 비판은 '아름답고 멋진 서울'을 향한 오 시장의 의지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환기하고 있다. 스노우보드의 거대한 골격이 올라가던 지난 11일 오후, 광화문광장을 지나던 택시기사는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짜증을 터뜨렸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점점 팍팍해지는 사람들에게 광화문광장의 화려한 이벤트는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었다.
장인철 피플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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