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가 아니다. '카'나 '반지의 제왕' 같은 메커니즘과 스펙터클을 기대하면 큰 오산이다. 올림픽공원 한얼광장 내 빅탑시어터에서 공연중인 '시르크 넛'은 메커니즘에 압도돼 가는 한국을 반성케 한다.
21.3m 높이의 천막 공연장 아래 마련된 무대에는 발레를 주조로 해 리듬체조, 고도의 서커스 묘기 등 신체 언어의 향연이 펼쳐졌다. 토 슈즈를 신고 고난도 회전 연기를 무수히 선보이고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객석에 밝은 얼굴을 보이는 벨라루스 국립서커스단원 57명이 그 주인공이다.
발레를 주조로 서커스를 혼합한 이 100분짜리 무대는 한국의 상품이다.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부단히 확장돼 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 중에는 역수출도 있다.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내년 9~10월 잡혀 있는 공연이 그것이다. 성탄절을 전후해 민스크의 공연계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와서 올림픽공원 무대를 관람키로 한 일정은 그 전초 작업인 셈이다. 공연제작사 J&S인터내셔널은 싱가포르, 중국,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의 투어도 물색중이다.
이 같은 형식의 공연물이 나오게 된 중심에는 명재임 총예술감독이 있다. 공연의상 디자인회사로 출발, J&S인터내셔널을 설립한 명 감독은 '호두까기 인형'을 서커스와 결합시키는 새 무대에 생각이 닿았다. '태양의서커스' 등 전세계 서커스단의 원천 공급지인 벨라루스가 물망에 오른 것은 필연적이었다. 교보생명과 함께 모두 32억원의 제작비를 투입, 벨라루스 현지에서 8개월 간의 연습이 펼쳐졌다. 명씨는 "대중성(서커스)과 예술성(발레)을 결합시킨다는 해묵은 숙제가 시너지 효과로 귀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홍보와 마케팅 등 하드웨어는 미약하다는 자평이다.
공연장에서는 무대 앞뒤로 러시아어, 아이슬란드어(연출자가 아이슬란드인), 영어, 한국어 등 4개국어가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다국적 작품이다. 그러나 일단 공연에 들어가면 벨라루스 국립발레단의 최우수 무용수, 국가대표급 리듬체조 선수, 동구권 서커스대회 메달리스트 등이 엮어내는 환상적 무대가 기다린다.
명씨는 "동구권 예술인들의 완벽한 테크닉이 소문나면서 광고용, 사원행사용 등으로 투자를 제안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3년이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추세라면 현실적으로는 손해지만 좋은 공연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시르크 넛'의 힘이다. 31일까지 한국 공연을 마치면 벨라루스로 돌아가 세계 순회공연 등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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