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표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 용역 결과는 영리의료법인의 도입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벌여온 찬반 논쟁을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일방적 찬반 논리에서 벗어나 도입효과와 부작용을 실증적으로 분석, 비교해보자는 취지에서 두 부처가 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공동 발주한 용역이었지만, 보고서는 합의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동일한 사안에 대해 각각의 분석을 병렬시키는 데 그쳤다. KDI와 진흥원의 연구결과를 쟁점별로 비교해본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의료인력 양성의 특성상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되면 의료인력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특히 지방이나 중소병원의 인력 유출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돼 가뜩이나 심각한 지역간 의료격차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진흥원의 분석 결과, 영리의료법인의 유형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외부 자본조달이 필요하고 전문병원 등으로 특성화가 가능한 개인병원의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될 경우, 의사 998~1,397명이 한꺼번에 영리병원으로 유출돼 300병상 이하 중소병원 약 66~92개가 폐쇄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중소병원이 의료인력 유지를 위해 의사 월 100만원, 간호사 월 50만원씩 급여를 인상하면, 이는 비용상승으로 이어져 수가인상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결국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우려된다.
반면 KDI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문의 경력을 포기하고 의원급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의 인력을 고용할 인센티브를 마련하면 인력부족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민의료비 상승 여부
KDI는 시장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된다면 영리의료법인의 도입으로 자본투자와 서비스 공급이 증가할 경우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필수 의료부문에서는 진료비가 감소할 것으로 추측했다. 분석자료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의료서비스 가격이 1% 하락하면 국민의료비는 2,56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진흥원의 분석은 정반대였다. 인구 3%(150만명)의 고소득층에게 평균 진료비의 2~4배에 해당하는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국민의료비는 1조5,000억~2조원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때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은 2007년 기준 6.81%에서 6.98~7.03%로 증가하게 된다.
개인병원의 영리법인 전환율이 20%일 경우에도 국민의료비 상승은 7,000억~2조2,000억원에 달했다.
◆의료서비스의 품질
KDI는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돼 적절한 경쟁구조가 보장될 경우, 고급 의료서비스의 확대뿐 아니라 통합적 진료 등 신개념 의료 서비스가 출현해 소비자 선택권을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건강보험 전체 급여비의 35.9%를 차지하는 만성질환자에 대해 의료와 돌봄, 기타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으며, 특정한 선택적 서비스에 집중하는 기능 특화형 의료기관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흥원은 전체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일부 해외사례에서와 같이 영리병원이 수익창출을 위해 비영리병원보다 고용인력을 줄일 경우 간호 등 대면 서비스 인력이 감소해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창출 등 산업효과
영리의료법인 도입의 찬성 근거로 자주 거론돼온 산업적 기대효과는 어떤 유형의 법인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편차가 컸지만, 고용창출과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해외환자 진료만 가능한 병원에 매년 30만명의 환자가 병상 70%를 점유하고, 평균 진료비의 2~5배를 지불하며 8일간 입원할 경우, 생산유발은 1조7,000억~4조8,000억원, 고용창출은 1만3,000~3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고급 의료서비스 수요 충족형의 법인이 들어설 경우에는 2조7,000억~3조5,000억원의 생산유발과 2만1,000~2만7,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된다.
KDI는 24조원의 부가가치 확대와 21만명의 고용증대 효과를 추정한 올해 한국은행의 분석을 인용하며, 영리의료법인이 창출하는 다양한 부문의 신규수요가 추가적 자본투자와 고용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KDI는 또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연구개발영역인 첨단의료기술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도 자본조달이 용이한 투자개방형 의료기관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작용 보완책
KDI는 영리법인 도입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 정보공개 강화와 의료접근성 약화를 줄이기 위한 공적 의료보?체계 정비가 보완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진흥원은 수익성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영리법인의 속성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과잉진료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하며, 의료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필수공익의료가 확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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