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도 경제적이어야 합니다. 최저비용으로 최고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해요."
4대째 대물림 받은 논을 밑천으로 20대에 직업 농민의 길로 들어서, 어느덧 30년 외길을 걷고 있는 쌀 전업농 주영모(55)ㆍ최향숙(52)씨 부부.
농촌 파수꾼을 자처하는 이들 부부 농군은 '벼농사 만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농촌을 떠났거나, 쌀을 포기하고 작목을 바꾼 이들에게 잘 사는 농촌은 결코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농의 길 찾다
주씨 부부는 1980년 결혼과 동시에 낙동강 유역의 기름진 경남 창원시 동읍 산남리에서 농사일을 시작했다. 당시 2만㎡ 남짓한 논이 전부였다.
"이왕 농사짓는 거 좀 더 과학적이고 경제적으로 짓고 싶었어요. 다른 나라는 다 기계가 농사를 짓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사람 손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경운기가 고작이던 당시, 주위의 우려를 무릅쓰고 주씨는 대형 트랙터 한 대를 들여왔다. 기계화를 통해 인건비와 영농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모험에 가까웠던 그의 '기계화 영농' 도입은 농촌이 고령화에 따른 극심한 일손부족에 봉착하면서, 갈수록 빛을 발했다. 주씨는 내친김에 이앙기, 콤바인, 건조기, 트럭, 지게차에 이어 논두렁 쌓기 기계까지 도입했다.
지난 해에는 밥맛을 결정하는 벼의 온도와 습도를 최적의 조건으로 보관하는 '벼 사일로'까지 설치, 명실상부한 벼농사 전 과정에 걸친 기계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에 옛 품앗이를 발전시킨 작목반까지 꾸려, 농업의 기계화를 접목시킴으로써 그는 마침내 기업영농시대를 열었다. 여섯 농가 부부가 참여한 '산남영농단'은 농사를 공동 생산ㆍ판매형태로 꾸리고 있는데, 이런 영농합리화를 통해 기존 농가보다 70~80%높은 소득을 올렸다.
공부 또 공부
주씨가 고소득 농가반열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공부와 연구의 연속이었다. 인문계 고교를 나와 딱히 농업분야에 전문 지식이 없었던 그로서는, 선진 영농기술을 배우기 위해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거듭했다.
"농협은 말할 것도 없고 시에서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와 농촌공사까지, 강좌가 개설된 곳이라면 빠짐없이 찾아 다니며 배웠지요."
그에겐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특히 '영농일지'는 30년 넘게 이어져 지금 과학영농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날씨와 기온, 작업내용 및 특이 사항을 영농일지에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 부부에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더없이 값진 영농교본이다.
영농일지와 함께 월별계획표도 깨알 같은 글씨체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런 그를 두고 마을에서는 '움직이는 사가(史家)'로 부른다.
1995년 경상대 농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등 100여개 넘는 수료증에서도 과학영농을 향해 달려 온 그의 집념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터득한 영농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1998년 경남사이버동호회를 결성, 각종 영농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는 '얼굴 있는 농산물'생산을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도시민들과 직거래를 실시하고 있다. '아름농장'이란 농장 이름도 이때 만들었다.
친환경농업
"그저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담보될 수는 없지요."
주씨는 친환경농법이야말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다. 화학비료를 줄이는 대신 볏짚과 천연퇴비를 뿌려 땅심을 높이고 농약살포를 억제하는 '저농약 농법'을 시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처음엔 화학비료를 50% 줄였고 시비량까지 줄여, 이젠 화학비료 없이 천연 퇴비만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주씨 부부는 현재 재배작물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수박과 단감재배에, 콩, 팥 등 잡곡에 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특히 창원 수박과 단감이 일본과 미국 동남아 지역 수출길을 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주씨는 상복도 많다. 2000년엔 농협의 새농민 본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동탑산업훈장의 영예까지 안았다. 다른 상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그는 "그저 성실하게 농사지은 것 말고는 없다"고 말하지만, 이 정도 보상은 그야말로 '국가와 사회가 그에게 주는 최소한의 감사'일 뿐이다.
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사진,창원=이성덕기자 s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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