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너는 모른다' 경멸·비밀로 '일그러진' 가족, 그들은 어떻게 마주보게 되었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너는 모른다' 경멸·비밀로 '일그러진' 가족, 그들은 어떻게 마주보게 되었나

입력
2009.12.14 00:37
0 0

정이현 지음/문학동네 발행ㆍ487쪽ㆍ1만2,000원

"삐뚤게 잘린 엄지 발톱이 살갗을 조금씩 파고들어도 많은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 제 발을 멀뚱멀뚱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발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쳐야만 뒤늦게 당황했다. 어쩔줄 모르는 나머지 엉뚱한 곳으로 원망의 화살을 날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238쪽)

소설은 가족의 가치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대표적 장르다. 부르주아 가족 내부에서 들끓는 팽팽한 긴장과 갈등은 소설을 먹여 살려온 일용할 양식이기도 했다. 소설가 정이현(37)씨는 <너는 모른다> 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설의 고전적 명제를 놓고 씨름한다.

등단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2)로 출발,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마니아들을 거느렸던 첫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2006)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20~30대 여성들의 세태를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냈던 정씨에게 의미있는 도전인 셈이다. 이 소설은 형식적으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나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처럼 가족을 구성하는 다중의 화자들을 순서대로 조명하는 '가족소설'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여기, 서로에게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중산층 가족이 있다. 중국 상대 무역업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불법 장기 매매로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 김상호, 화교 출신으로 이따금 대만에 있는 대학시절의 애인과 밀회를 하는 김상호의 두번째 아내 진옥영, 생활비를 타러 올 때만 아버지를 찾아오는 전처 소생의 딸 은성, 유복한 의대생으로 보이지만 몰래 등록금을 빼돌리고 학교를 그만둔 아들 혜성, 김상호와 진옥영 사이의 딸로 바이올린 영재인 유지가 그들이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종잇장으로 지은 집처럼 이 가족은 위태위태하지만 겉으로는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 내부의 균열은, 유지의 돌연한 실종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가족 구성원들이 유지의 행방을 좇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인터넷에서 연재된 소설인데 작가는 "연재의 특성상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추리소설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가 등장하지만 치밀한 트릭이나 형사와 범인의 대결 등은 찾아볼 수 없고 사건의 전모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정씨는 자신의 작품을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우면서 그저 꾸역꾸역 살아가는 가족의 기록"이라고 요약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김상호가 무언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가족들은 어렴풋이 알고 속으로는 경멸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들춰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작품의 제목은, 모두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단자(單子)로서의 현대 가족의 단면을 함축한다. "가끔은 자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타인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는 혜성의 독백은 가족 이데올로기는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통통 튀는 정씨의 다른 소설과 달리,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기는 어둡고 우울하다. 하지만 유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들이 서로의 비밀을 맞닥뜨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낙관적이기도 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