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지 하나. <고미술의 유혹> (한길아트 발행)은 통계수학에 갇혀 살던 금융분석가를 전혀 다른 세계에 빠뜨린 꽃나무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미국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거시경제와 통화정책을 연구해 온 김치호(55ㆍ사진)씨. 김씨는 20여년 전 우연히 들린 지방 골동품가게에서 매화 그림 한 점을 10만원 주고 샀다. 반쯤은 충동구매였다. 낙관도 화제(畵題)도 없는 민화 한 점이 고미술의 세계로 떠나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되리라곤, 김씨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고미술의>
"현실 문제를 딱딱하게 사고하는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여린 매화가지가 주는 느낌은 특별한 것이었어요. 로고스의 영역에서 파토스의 영역으로의 전환이랄까요. 고미술의 매력에 빠져 지낸 지난 20년은 권태를 벗어나 늘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일종의 여행이었습니다."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이 컬렉터의 길로 접어들면서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에세이다. 동시에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전통 예술의 세계를 안내하는 개론서이면서, 고미술 시장의 뒷얘기를 전하는 저널의 성격도 지닌다. 김씨는 그러나 "난 아카데믹한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없고 컬렉션을 본격적으로 해 본 적도 없다"며 "열병 같은 희열에 들떠, 더러는 통장을 마이너스로 만들어가면서 맺은 인연의 기록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눈길은 아정(雅正)한 것보다는 질소(質素)한 것에 오래 머문다. 무뚝뚝한 목수의 표정이 투박한 손자귀 자국으로 남은 반닫이, 무심한 듯 다감한 도공의 심성이 분방하게 표현된 분청사기 등이 그가 특별히 사랑하는 것들. 김씨는 "거금을 들여야만 컬렉션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떠돌이 환쟁이가 그렸을 민화 한 점에서 한국적 정서와 한을 충분히 교감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는 "사회의 안목이 높아질수록 인위적 기교와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이런 작품들이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책의 많은 부분을 고미술계에 광범위하게 퍼진 도굴과 가짜 미술품 이야기로 채웠다. "사회적 신뢰가 가장 부족한 곳이 고미술 시장"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지난 20~30년 경제가 도약했듯, 고미술 시장에도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다"며 "이것이 고미술 르네상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신뢰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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