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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3>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의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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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3>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의 머리말

입력
2009.12.1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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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에는 지은이 일연(一然)의 '머리말'과 같은 글이 따로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이 시작되는 '기이'편에 '머리말(敍曰)'을 붙여,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 같은 허탄한 이야기라도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면 괴이할 것이 없다는 편찬 방침을 밝혀 놓아 크게 주목할 만하다.

'무릇 옛날 성인이 바야흐로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교화를 베푸는데 괴력(怪力)이나 난신(亂神)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는 때에는 부명(符命)과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여느 사람과 다른 데가 있은 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서 제왕의 자리를 얻고, 큰일을 이루었다.'

'괴력난신'이라면 괴이한 힘이나 귀신 이야기를 말하고, 중국의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우리 삼국(三國)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기적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무엇이 괴이하다고 할 것인가를 되물었다.

일연은 이것이 책 첫머리에 '기이편'을 싣는 까닭이고, 신이(神異)를 여러 편의 앞에 싣는 뜻임을 뚜렷이 하였다. 이 말은 일연이 이 역사책을 쓰는 뜻과 사관을 밝히는 중요한 대목이어서 다시 곱씹어 논의할 만하다.

그래서 2,000년 전에 곰의 아들이라는 단군 임금이 아사달에 나라를 세운 '고조선-왕검조선'으로부터, 삼한(三韓)ㆍ오가야(五伽倻)와 부여(扶餘) 등, 삼국 이전의 한(韓) 민족 전래 문헌들을 주의 깊게 기록하여, 세 나라의 역사의 전통을 뚜렷이 밝혀 주었다.

고조선을 통일된 우리 민족 국가의 기원으로 규정하고, 한민족 국가 전통의 역사적 개념을 명백히 드러냈다. 게다가 <삼국사기> 보다 반세기 이상 앞서 만들어져 이미 실전된 <가락국기(駕洛國記)> 의 귀중한 역사 문헌을 요약함으로써, 고대 네 나라 시대의 역사를 복원시켜 준 것은 이 책의 더없는 가치이다.

더구나 이러한 신이한 기사는, 나라의 시조들뿐만 아니라 신라 역대의 왕들과 스님과 화랑(花郞)에서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인물과 소재의 승속(僧俗)은 물론 사람들의 역사 속에 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신앙의 능력까지 중시한 것이다.

고려 시대는 역사학의 시대였다. 1145년에 <삼국사기> 가 완성되고 1215년 각훈(覺訓)의 <해동고승전> 이 지어진 뒤에, 1281년경 일연의 <삼국유사> 가 탈고되기까지 대략 70여년 간격으로 세 개의 주목할 역사책이 지어졌다.

이 고려 사학사(史學史)는 <삼국사기> 가 불교와 한민족의 신앙의 마음을 뺀 역사라는 반성에서 시작하여, 삼국의 역사를 고승전 중심으로 쓴 <해동고승전> 과 <삼국유사> 로 불교적 시각에서 크게 바꾸는 역사의식의 변화였다.

그리하여 '괴력 난신'을 들고 나온 이 짧은 머리말은, 구전 설화와 불교사를 새 역사로 통합하고, 이것은 한민족의 신앙(信仰)의 역사와 함께, '고조선'과 '사뇌가(鄕歌)' 14수와 같은 역사와 문학의 광대한 문화 광맥을 되살려냈다.

이를 두고 일연의 '신이사관(神異史觀)'을 말하기도 하는 것은 사관(史觀)이 역사가의 양심이란 말을 되새겨 보게 하는 귀중한 본보기라 할 터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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