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김반석(사진) LG화학 부회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금융위기 이후 매출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었던 것. 그는 "내년(2009년)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1년 후 다시 만난 김 부회장은 오히려 더 젊어 보였다. LG화학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올해 가장 주목 받은 기업으로 떠오른 때문일 것이다. 이 회사의 '화려한 2009년'은 1월부터 시작됐다.
미국 GM이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의 리튬 이온 배터리 단독 공급자로 LG화학을 선정한 것. 업계에서는 LG화학이 2015년까지 2조원의 추가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핵심 기술인 전지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됐다는 데 있다. 김 부회장은 "지금까진 패스트 팔로우어(Fast Follower)였는데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됐다"고 표현했다. 10년 가까이 이어온 2차전지 분야의 꾸준한 연구개발(R&D)이 성과를 드러낸 것이다.
실적도 좋았다. LG화학은 3분기 매출 4조3,643억원, 영업이익 7,299억원, 순이익 5,430억원의 성적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9.7%, 영업이익은 75.3%, 순이익은 82.8%가 증가한 것으로, 분기별 기준으로 사상 최대이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올해 실적의 가장 큰 배경을 묻자, "환율이 제일 큰 효자였다"고 대답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고 하는데, '환율 효과와 재정 지출 효과를 빼면 적자'라는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말이 맞다"고 말했다.
또 "2009년 경영계획을 짤 때 원ㆍ달러 환율을 평균 1,100원으로 봤는데 1,600원까지 치솟았던 만큼 환율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내년엔 어떨까. 김 부회장은 "내년 원ㆍ달러 환율은 일단 1,140원으로 보고 있는데 지금 추세라면 더 내려갈 것"이라며 "다만 미국과 유럽 경기가 다소 회복되며 전반적으로는 2009년보다는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더 우세하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물론 올해 LG화학의 선전을 모두 외부 환경 덕으로만 돌리는 것도 온당한 평가는 아니다. 김 부회장은 사실 '스피드(Speed) 경영'의 전도사다. 그는 "빨리빨리 하자는 게 아니라 쓸 데 없는 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그래야 꼭 필요한 일에만 집중해 결과적으로 시장 변화에 맞는 제품을 제 때에 내 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또 "공정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활동으로 불황에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한 점과 프리미엄 제품군을 확대, 이익률을 높인 것도 올해 실적 개선에 한 몫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매출액이 LG전자의 절반 수준인데도, 주가급등으로 시가총액은 LG전자와 비슷하게 된 것도 영업이익률은 2배 이상 높기 때문이라는 게 시장 분석이다.
앞으로 LG화학은 단순히 한국 기업이 아닌 글로벌 컴퍼니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이미 중국에만 공장이 10개이고, 현지 직원은 5,000명을 넘는다"며 "앞으로 LG화학은 자연스레 다국적기업(MNCㆍmultinational corporation)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국 공장에선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임원도 대부분 중국인이다. 또 미국에서는 재미 동포 재원들을 적극 활용,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 김 부회장은 "사업은 부정적 생각을 하는 순간 무너진다"며 "잘 되는 것만 생각할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