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수업적, 기술수요 조사, 유망기술 조사 등 교육과학부와 산하단체로부터 유난히 많은 설문성 이메일들이 날아든다. 숫자가 감당하기 힘든 정도여서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미적대고 답하지 않으면 독촉전화가 오고 그제사 마지못해 숙제를 한다.
아버지는 "옛부터 글공부를 해서 관직에 나가는 게 최고"라며 내가 법대에 가서 고시 보기를 희망하셨다. 지나친 기대가 부담스러워 고교 때 이과를 택했다. 의사가 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과학은 좌, 우가 없고 엄연히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과 진리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과학자가 되었고 대학에서 과학도들을 가르치는 행운도 안았다. 똘망똘망한 학생들 중 나를 뛰어넘어 세계사 속에 우뚝 설 제자가 나올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과학자는 창조적인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한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곤 한다. 정부와 산하기관에서 무차별로 내주는 숙제나 가끔씩 연구과제 발표하러 대전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이 훌륭한 직업을 퇴색시킬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심기가 편치 않다. 세종시에 행정부처 이전은 곤란하니 서울의 대학과 과학단지를 이전시키자는 논의가 대안인양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부처 이전이 나라의 미래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문제제기의 핵심은 효율성이다.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에 있으니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면 나랏일을 하는 공직자들이 서울과 충남을 오가는 일이 당연히 생길 터이다. 대전의 과학재단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이래저래 소비되는 한 나절 시간이 아깝다고 투덜대는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왜 대학과 과학자들인가? 대학이나 과학단지가 서울 이외의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길이라면 그 논의는 대학의 미래와 과학발전 측면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싸움의 대타로 교육과 과학을 끌어들이는 한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은 없다. 이는 마치 동네에서 힘 자랑하는 아이들끼리 싸우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조용히 방 안에서 책 읽는 아이를 끌어내 자기들이 어지럽힌 마을을 대신 청소시키는 격이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학자였고, 학자들을 가장 가까이 한 성군이었다. 집현전의 학자들은 통치의 씽크탱크였다. 장영실처럼 신분이 낮은 사람의 과학적 재능도 적극 활용한 그는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고 정치, 경제, 군사, 학문, 예술 전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마련한 가장 성공한 임금이다. 지금의 세종시 논란은 이런 세종대왕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육과 과학은 백년지대계다. 대학 연구실에서 밤을 밝히는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넘어 미래에 세계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들이다. 나는 현재의 의치학대학원 광풍 속에서 과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지성인의 품위, 사회적 책임, 그리고 세계를 지휘하게 될 머지않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토대는 튼튼한 기초학문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과학에선 진리가 항상 승리한다"고 분자생물학의 아버지 막스 페루츠는 말했다. 그의 뒤를 잇는 순수 과학자들, 나아가 순수학문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를 꺾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지속적으로 번영해야 할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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