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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무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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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무와 시

입력
2009.12.1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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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옆 작은 공원에 가면 나무가 있어

나무는 내게 의자를 내어주고

그늘을 내려주지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네

성당 옆에서 떨어지는 잎새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순간을 내게 떨구고 가네 길가에서 새를 보면

아름답고,

빛나는 붉은 심장이 하늘에서 우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면 나무에 와서

많은 연인들이 고백을 하고 맹세를 하고

이별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소용없는 일은

나무를 멀리 옮겨 놓는 일

바람이 다시 저 나무 흔들고,

나무 곁에는 늘 지나가는 첼로라는 악기

나무 곁에 머물 수 있을 때는

시를 읽을 수 있을 때

시를 다 읽고 나면

나무를 떠나야 할 무렵

그러나 저 성당이 생긴 것은 아주 오래전,

나무가 바람을 만난 것은 더 오래전

나는 아직 세상에도 없었을 그 오래전 일

● 잡지를 만드시는 한 수녀님이 제게 전화해서 원고를 청탁하시더군요. 내년에는 소설만 쓸 생각입니다, 라고 말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녀님이 혹시 종교가 있느냐고 제게 물어보시더군요.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고, 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세례명은 무엇인가요? 수녀님이 재차 물었지요. 움찔. 프란체스코입니다만……그 때 수녀님이 깔깔깔 웃으면서 저는 글라라예요, 라며 너무 좋아하시더군요. 겨울이 시작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의기소침, 마음이 쓸쓸했는데, 그 웃음소리 덕분에 마음이 환해졌어요. 제겐 그 웃음소리가 시였던 셈이네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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