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최근 국내ㆍ외 기전에서 4회 연속 준우승에 머무는 등 한동안 부진했던 이창호가 10일 끝난 37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결승 5번기서 원성진을 3 대 1로 누르고 우승, 다시 국내 바둑계 최정상에 우뚝 섰다. 2003년 12월 34기 우승 이후 꼭 6년 만이다.
당시 이창호는 스승 조훈현과 풀세트 접전 끝에 3 대 2로 승리, 명인 6연패(통산 12회 우승)를 달성하며 명실상부 국내 최고 기사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듬해 갑자기 기전이 중단되는 바람에 자동적으로 명인 타이틀은 주인을 잃은 채 한동안 창고 속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2007년 명인전이 우승 상금 1억원의 거대 기전으로 부활했지만 한번 손을 떠난 명인 타이틀은 좀처럼 이창호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세돌을 필두로 한 후배들의 급성장과 원인 모를 두통에서 비롯된 컨디션 이상이 안팎에서 그의 입지를 좁혔다. 우승은커녕 결승 진출조차 버거워졌다.
작년 37기 때는 3자 동률재대국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결승 티켓을 놓쳤다. 이창호에게 쓴 잔을 마시게 한 상대가 바로 원성진이었다(원성진도 그 후 강동윤에게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37기에서는 이창호와 원성진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은 한 판 한 판이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열전의 연속이었다. 결승 1국은 이창호의 불계승, 2국은 원성진의 1집반승, 3국은 다시 이창호의 3집반승.
두 선수는 엎치락뒤치락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마지막 승부는 결승 4국에서 결정됐다. 그것도 딱 반집으로 승패가 갈렸다. 우승 상금 1억원의 주인이 마지막 반패 싸움에서 결정된 것이다.
이로써 이창호는 통산 열세 번째 명인에 올라 대회 최다 우승 기록 경신과 더불어 1989년 28기 최고위전에서 조훈현을 누르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 모두 138회 왕관을 머리에 얹었다(국제기전 23회ㆍ국내기전 115회). 또한 우승 상금 1억원을 보태 올해 상금 총액이 5억원을 돌파했다.
이창호의 이번 우승으로 명인전은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 기사에게만 정상의 자리를 허락한다는 오랜 전통을 계속 이어갔다.
명인전이 지금까지 37기를 지내 오면서 수많은 강자들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한 번이라도 타이틀을 품에 안은 기사는 조남철 김인 서봉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 딱 여섯 명뿐이다. 하나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바둑 영웅들이다.
이로써 37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은 6월 국내 기전 사상 최다 인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통합예선전을 시작으로 본선리그와 결선토너먼트 등 6개월에 걸친 장정을 치른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새 명인 이창호와 준명인 원성진에 대한 시상식은 17일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호텔에서 열린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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