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지음ㆍ김명남 옮김/김영사 발행ㆍ624쪽ㆍ2만5,000원
국내에선 종종 석학으로 소개되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도 인정하듯, 과학자라기보다 저술가다. 그것도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여느 작가와의 차이라면, '셰익스피어 대신 다윈을 전공했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강력하고 도발적인 추력(推力)이 그의 장기인데, <이기적 유전자> (1976)부터 <만들어진 신> (2006)까지 그는 아홉 권의 책을 통해 대중을 다위니즘의 매력에 휘말려들게 만들었다. 만들어진> 이기적>
도킨스의 열 번째 책인 <지상 최대의 쇼> 는 조금 다른 색채를 띤다. 유전자 결정론과 무신론을 앞장서 전개한 전작들이 전투적이었던 데 비해, 진화의 증거를 찬찬히 설명하는 이 책은 차분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자신이 설파한 무신론의 '교리'를 옹호하는, 일종의 '변증론'이 지닌 넉넉함이랄까. 여튼 무척 친절해진 도킨스를 만날 수 있다. 지상>
진화론의 최전방에 선 거장이 최후방의 대중들도 고개를 끄덕이도록 쓴 이 책은, 전후방의 간극만큼이나 폭넓은 진화의 증거를 담고 있다. 초기 배아의 발생과정, 기린의 배배 꼬인 해부구조, 현대 분자생물학의 성과 등을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역시나 내용 못지않게 도킨스 특유의 깔끔하고 힘이 넘치는 필력이 돋보인다. 삼라만상에 두루 퍼져 있는 다위니즘의 증거를 모아, 기어이 진화라는 '지상 최대의 쇼'를 독자의 눈 앞에 연출해 보인다.
분노까지 느껴지던 전작의 뉘앙스에서 벗어나 있지만, '신이라는 망상'을 깨뜨리려는 도킨스의 문제의식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전작들이 창이나 도끼였다면 이 책은 방패인 셈. 지난 5월 한국일보 특별기획 '다윈은 미래다'에서 가진 인터뷰 당시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학자로서 생명을 이해하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관이 있을 수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나는 맹렬한 적대감을 느낍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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