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인들로 복작거리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노천 카페에서였다. 어느새 김주영 선생이 건너편 테이블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기 좀 보세요. 무슨 이야기가 저리도 재미있을까요?" 몹시도 소란스러웠지만 우리말이었더라면 그들의 대화 내용을 알아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손짓과 갑작스럽게 터지는 웃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들이 오랜 친구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런 게 바로 정담이지요." "예? 아, 정담(情談)이네요." "보세요, 세 사람이 솥발처럼 앉아 있지요?" 그제서야 선생이 말씀한 정담을 바로 알아들었다. 정담(情談)이 아니라 정담(鼎談)이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정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쓰러지지 않게 솥발처럼 간격을 벌리고 앉은데다 그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즐기고 있었다. 불쑥불쑥 선생은 기발하거나 재미난 말로 일행을 즐겁게 했다.
역시 쓰기 이전에 보는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의 막내였던 박소연씨가 가져온 신발과 그 용도를 다 알아맞히기도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선생의 마지막 우스갯소리는 두고두고 기억난다. 일행 중 하나가 공항에서 산 데킬라를 넣기 위해 트렁크를 열었다. 속이 꽉 찬 트렁크에서 기다렸던 듯이 붉고 푸른 속엣것들이 튀어나왔다. 선생이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돼지 잡았나?"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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