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종됐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올해는 경기침체 여파로 더욱 썰렁하다.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해 연말에 비해 올해 들어 위기가 더욱 체감화한 때문인 듯 하다. 매년 이맘때면 탄성이 나올 정도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화려하게 꾸민 집이 서너 집 건너 하나 정도는 됐었다. 그 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집을 찾기가 정말 어려워졌고 앞마당에 조그만 트리 하나가 고작이다. 미국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이러니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빠듯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쪽에서는 돈 잔치가 벌어진다. 최근 미 행정부 인사관리처(OPM)에 따르면 2007년 12월~올해 6월 사이 10만달러 이상의 고액연봉 공무원이 19%로 5%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법무부는 15만달러 이상 받는 공무원이 무려 5.6배 이상 늘어났고, 대부분의 부처에서도 2~4배 많아졌다. 올해 19만 2,700여개의 연방 공무원 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이는 1960년대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민간분야에서 730만개 이상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실업률이 10%를 넘어선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1일 CBS 방송과의 회견에서 월스트리트의 금융계 인사들을 "살찐 고양이"라고 비난하며 "소수의 살찐 고양이 같은 은행가들을 도우려고 대통령에 나선 것이 아니다"라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서민의 피폐한 삶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월스트리트가 연봉제한 등 금융감독 강화 방침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려 하자 이들의 '몰염치'를 지적한 것이다.
미국 최대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최근 구제금융 자금 450억달러를 조기에 모두 갚았다면서 "이는 정부의 구제금융 정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이는 구실일 뿐 다시 고액 연봉잔치를 하기 위해 정부의 족쇄를 끊어낸 것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 감독통제의 무력화를 위해 일부 은행들이 구제금융 상환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미국에서는 실직자들이 구세군 자선남비 '종치기'나 쇼핑몰의 산타클로스에 대거 몰리고 있다. 10월 플로리다의 한 도시에서는 시간당 7.25달러의 파트타임 '종치기' 직원을 한명 뽑는데 무려 325명이 지원했다. 조금 벌이가 나은 산타직에는 지난해보다 20%이상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들과 월스트리트 인사들은 미국의 이중적 모습을 보여준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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