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면 절반 정도가 뒤돌아 본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사장이라면 돈 많고 존경 받는 사람이니 부러움의 대상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장은 꿈이고 소원이다. 그래서인지 상대방을 잘 모를 때는 일단 사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유흥업소에서는 일반적 현상이다. 최근에는 골프장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온갖 종류의 교수 늘어나
진짜 사장님들은 적잖이 못마땅할 법하다. 아무나 사장이냐고. 그래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장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더 격이 높은 호칭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재벌 총수들이 회장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니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재벌그룹에는 사장은 숱하게 많다. 부회장도 여럿이다. 그러나 회장은 오직 한 명, 총수뿐이다. 그러니 회장이라고 불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아마도 앞으로는 회장의 수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지간한 규모의 회사만 돼도 회장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술집이나 골프장에서도 사장이라고 불러서는 안될 것 같다. 이미 회장이라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에 나타난 또 하나의 특이한 칭호는 교수이다. 가히 '교수 홍수' 시대라고 할 정도이다. 대학도 많이 늘어났지만 거기에 못지않게 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어지간한 사람을 만나면 교수 명함을 내민다. 온갖 종류의 교수가 다 있다. 겸임교수, 대우교수, 특임교수, 초빙교수, 강의교수, 석좌교수, 명예교수, 객원교수, 연구교수 등등….
사실 교수란 그렇게 영양가 있는 자리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리 교수라는 칭호가 남발되고 있는지 참 모를 일이다. 교수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다. 그렇다고 크게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교수라는 칭호를 사용하려고 기를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교수, professor는 전문가란 뜻이다. 직업 명칭에 전문가를 뜻하는 프로(pro)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직종은 교수뿐이다. 교수란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겸임 전문가, 대우 전문가, 특임 전문가, 초빙 전문가 등의 전문가도 있는 셈이 되었다.
교수는 해당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사람이라야 그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대학에 봉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통상 우리가 지칭하는 교수이다. 대학은 최고 교육기관이니 전문가가 학생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고, 이때의 선생이 교수이다. 다만 경력에 따라 조교수, 부교수, 교수 등으로 구분될 뿐이다.
이처럼 교수란 매우 단순한 호칭이다. 그 앞에 각종 수식어가 붙을 이유가 없다. 수식어가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교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진짜 교수는 그냥 교수일 뿐이다. 아직 연륜이 짧으면 조교수이고, 좀 더 연륜이 쌓이면 부교수, 교수가 될 뿐이다. 교수에 수식어가 붙어 교수보다 더 낫다는 것인지, 교수보다 못하다는 것인지 아리송한 일이다.
성숙한 사회에 역행
교수의 종류가 하도 많다 보니 진짜 교수들이 다른 호칭을 개발할까 두렵다. 사장이 싫다고 회장으로 간 것은 일단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교수는 어떤 명칭으로 바꿀 수 있을지, 글쎄 마땅한 아이디어는 없다. 교수와 거지는 바꾸기 어려운 직종이라고 했는데 호칭 변경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자기 영역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이 교수 타이틀을 붙인다고 그 성공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교수 타이틀은 오히려 그 동안 쌓은 업적을 퇴색시킬 수 있다. 명칭이 중요하지 않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고 선진화한 사회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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