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본사에 역수출' 배스킨라빈스 현정섭 기능장
아이스크림 업계에서 2009년은 역사적 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처음으로 외국에 수출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말이다.
맛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한국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국산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중동으로 수출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손수 디자인한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케이크 디자이너 현정섭(33) 기능장을 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비알코리아(배스킨라빈스의 한국 프랜차이즈 도입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계를 녹인 한국 아이스크림 케이크
곰, 아니면 펭귄. 현 기능장을 처음 만난 순간 떠오른 단어다. 풍채 좋고 푸근한 인상이 디자이너라기보다 곰이나 펭귄을 닮은, 그저 맘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현재 전국 배스킨라빈스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가운데 현 기능장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제품은 거의 없다.
현 기능장이 디자인한 아이스크림 케이크 가운데 스트로베리샤롯뜨와 초코아모르 스트로베리요거트딜라이트 3가지는 6∼9월 중동과 중국 미국에 연달아 수출됐다. 모두 한국만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디자인한 제품이다.
스트로베리샤롯뜨는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평평한 윗면에 작은 주사위 모양의 아이스크림 조각이 수북이 얹혀져 있다. 마치 선물 꾸러미가 잔뜩 올려져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디자인이다. 가로 세로 각각 2.5cm 정도인 아이스크림 조각은 입에 쏙 넣어 먹기 딱 적당한 크기다. 바로 여기에 기술이 숨어 있단다.
"이런 조각들이 아이스크림 케이크 하나마다 40∼50개씩 들어가요. 하루에 수천 개나 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생산하려면 조각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죠. 작은 아이스크림 조각을 이렇게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건 현재 한국에서밖에 못 합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배스킨라빈스 본사에서도 제대로 흉내 내지 못한다는 게 현 기능장의 설명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조각 모양을 만들려면 아이스크림을 한 번 녹였다가 주사위 모양 틀에 넣고 다시 얼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녹이지 않고 신선한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네모나게 만들 수 있는 설비와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생선을 잡아서 바로 먹을 때랑 한번 얼렸다 해동해 먹을 때는 맛이 다르죠.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마찬가지에요. 녹이지 않고 원하는 모양을 낼 수 있다는 건 아이스크림 케이크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초코아모르의 윗면은 평평하지 않고 들쑥날쑥하다. 마치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 같은 모양이다. 또 스트로베리요거트딜라이트는 윗면에 화려한 레이스 장식이 놓여 있다.
빵으로 만드는 일반적인 케이크는 물결이나 레이스 같은 무늬를 표현할 때 보통 생크림이나 초콜릿을 이용한다. 긴 주머니처럼 생긴 용기에 생크림이나 초콜릿을 넣고 케이크 위에서 눌러 짜 내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디자인할 땐 이런 방식이 아예 불가능해요. 아이스크림을 용기에 넣고 짜낼라 치면 벌써 녹아 내리기 시작하니까요. 차고 신선한 상태에서 특수 설비를 이용해 단번에 원하는 디자인으로 완성한 다음, 바로 냉동실로 넣어야죠."
물결이나 레이스 무늬도 특별한 설비와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역시 국내 기술진과 디자이너의 저력인 셈이다.
제품 하나 나오는 데 1년 반
아이스크림 케이크 하나가 나오기까지는 최소한 3개월은 더 걸린다. 크리스마스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같은 날을 겨냥해 출시되는 특별한 제품은 길게는 1년 반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2010년 크리스마스에 선보일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이미 디자인이 상당히 진척돼 있다고 현 기능장은 귀띔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만드는 첫 번째 단계부터 현 기능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기본 콘셉트를 결정하는 것부터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콘셉트가 확정되면 그에 맞는 세부 디자인을 구상한 다음, 종이에 스케치를 해 본다.
어느 정도 틀이 나왔다 싶으면 소재를 찾는다. 초콜릿은 몇 개를 쓰고 리본을 묶을 것인지, 말 것인지 등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당연히 계절적인 요인도 감안해야 한다.
콘셉트와 디자인이 결정되면 충북 음성군에 있는 생산 공장과도 회의를 거친다. 주사위나 물결 레이스 장식처럼 특별한 설비가 필요한 경우엔 기기 개발자들과의 의사 소통이 무척 중요하다.
원하는 디자인을 정확히 표현해 낼 수 있는 정밀한 설비가 개발되지 않으면 점점 올라가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대응할 수 없다. 설비가 완성되고 계절이나 최신 트렌드에 적합한 아이스크림 종류까지 결정되면 그제서야 제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올해 수출에 성공한 아決뵀㈇?케이크 7종도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생산됐다. 이들 제품은 수출 전 이미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국내에서 먹힌 제품에 대해 외국 바이어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인 것이다.
6, 7월 사이 중동과 중국에서만 약 50만개의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팔렸다. 이후 9월에는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미국 수출 길도 열렸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제품을 역으로 프랜차이즈 본사에 수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비알코리아의 설명이다.
"예전엔 미국 본사의 디자인을 가져와 약간씩 가공해 만든 제품이 대부분이었어요. 솔직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거의 없었죠. 근본적 변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우리만의 디자인을 고안해 낸 게 세계 시장에서도 통했어요. 한국인의 감각이나 기술력이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사실도 증명됐고요."
현 기능장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엿보였다. 식품 업계에선 맛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디자인이 시장을 리드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단 예쁘고 맛있게 보여야 한다는 것. 그만큼 이번 첫 수출 성공은 의미가 크다.
빵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차이
사실 현 기능장은 3년 전만 해도 평범한 베이커리 디자이너였다.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아니라 빵 케이크를 만들었다. 5년 넘게 자신의 이름으로 케이크 전문점도 내고 직접 운영하면서 점점 케이크에 애착이 생겼다.
"베이커리에는 빵이나 케이크 종류가 워낙 많잖아요. 좀 더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빵으로 만드는 케이크 디자인은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스트로베리샤롯뜨처럼 수북이 쌓인 주사위 모양으로 빵을 만들고 있으면 빵이 금방 말라 버리죠. 또 빵 케이크는 장식의 대부분이 크림이나 초콜릿이잖아요. 달거나 느끼한 맛을 싫어하는 고객들은 애써 만든 장식을 걷어 내고 먹죠."
아이스크림만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이끌려 현 기능장은 과감하게 빵 대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택했다.
그는 스스로를 "아이 같다"고 말했다. '뽀뽀뽀'를 비롯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만화영화를 자주 본단다. 그것도 일부러 챙겨 보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해서 말이다. 이렇게 얻어진 감성과 창의성은 그가 디자인한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고스란히 전달돼 나온다.
"스머프 아시죠? 버섯 모양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에 사는, 몸 색깔이 파란 만화 캐릭터요. 그 버섯 집이 참 예쁘잖아요. 드림하우스란 이름으로 출시된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바로 스머프의 버섯 집을 본떠 디자인한 제품이에요."
현 기능장은 지난해 아예 스머프마을의 전체를 본떠 꾸민 아이스크림 케이크 별빛가득한집도 내놓았다. 이 제품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드림하우스에 놓여 있던 작은 펭귄 장식물을 확대해 산타펭귄이라는 새로운 제품으로도 출시했다. 하늘색과 분홍색 두 가지 색상의 산타펭귄을 보고 있으면 현 기능장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하다.
"내가 디자인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세계 각국에서 맛볼 수 있게 하는 게 꿈입니다. 적어도 아이스크림 케이크 디자인 분야에선 한국이 세계의 트렌드를 리드하는 거죠. 가능성은 이미 확인됐으니까요."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뛰어난 맛에 독특한 디자인… 중동 3개국·중국으로 수출
비알코리아는 9월 미국 던킨브랜즈(배스킨라빈스 브랜드 본사)와 아이스크림 케이크 총 1만개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수출 품목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스트로베리요거트딜라이트, 치즈 맛 아이스크림과 딸기 맛 아이스크림 조각이 조화를 이룬 스트로베리샤롯뜨,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칩을 고루 뿌린 초코아모르의 3종이다.
던킨브랜즈의 데이비드 캘버리 품질 담당 디렉터는 "뛰어난 맛과 디자인을 겸비한 한국의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도 점점 높아지면서 최근 수입 문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의 중동 3개국과 중국으로 수출된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미국에 수출된 3종을 포함한 총 7종이다.
이 가운데 특히 월드클라스초콜릿은 초콜릿을 좋아하는 중동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케이크를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특별히 만든 제품이다. 초콜릿 무스 아이스크림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화이트 초콜릿 무스로 화려한 레이스 장식을 얹었다.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에 크림 카라멜 시럽과 프랄린 피칸(설탕 시럽을 묻힌 땅콩류)을 고루 입힌 인크레더블가든과 쇼콜라엘레강스도 중동과 중국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게 비알코리아의 설명이다.
딸기 시럽을 두른 스트로베리치즈케이크는 선명한 붉은색의 독특한 디자인이 현지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