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문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가 어렵게 이뤄졌으나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합의에서 빠진 쪽이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합의 주체들도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만 노사정합의가 남긴 득과 실이 무엇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는 최종적인 것은 아니고 국회 입법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이룬 합의만으로도 몇 가지 평가가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노사정의 리더십이 손상을 입은 점이 문제다.
노사정 리더십에 상처
한국노총은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한 협상 막바지에 갑자기 복수노조를 유예할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여러 가지 전략과 사정이 있겠지만, 노동계 스스로 복수노조 유예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노조 운동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의 경우는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배제된 것인지, 참여를 거부한 것인지 모호한 측면은 있다. 어쨌든 민주노총이 참여한 6자회담 틀에서도 협상의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기회를 남에게 넘겨주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운동이 해묵은 비타협적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대안세력이 아닌 비판세력으로만 간주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영계는 최종 협상과정에서 책임 있는 당사자인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빠졌다. 유일하게 참여한 경총도 주요 회원사 그룹 간의 분란을 거치면서 역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향후 경영계의 대표성을 주장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경영계는 세계화 시대의 주체로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노동부는 시종일관 현행법의 취지대로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제도를 시행해야 할 명분과 원칙을 주장하다가, 협상 전략상의 이유를 들어 정책의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빚었다. 창구 단일화 방안을 구체화하고 향후 시계를 명확히 한 것은 기존 노동부의 정책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 준비기간을 지나치게 늘려 잡아 복수노조 허용이 국내외 여건상 시급한 당위적 과제라고 역설하던 과거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물론 모든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의 작은 합의라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모두가 모였다 하더라도 논의만 하다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상책일 수는 없다. 아울러 국회 논의과정이 남아있기에 보완 및 수정을 전제로 큰 줄기를 미리 잡아보자는 의도도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13년 유예의 끝이 재유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내년부터 제도개선을 시행하자는 주체들의 의지가 묻어있는 합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라는 노사관계의 골간에 해당되는 법제도의 시행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각자의 리더십이 현장에서 발휘되고 나아가 노사정 합의로 나타난 국가적 대의명분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합의를 위해 감수한 리더십의 손상이 예사롭지 않기에 향후 노사관계 질서의 연착륙 과정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적 공감 얻는 변화를
평균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노조 전임자, 조합비로 우선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전임자 비용, 국제기준과 통상질서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복수노조 유예, 과다한 복수노조와의 빈번한 교섭이 가져올 기업의 비용과 교섭의지 상실. 이런 것들이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우리 노사관계의 문제이자 미래의 관심사항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면서도 노동자의 기본권과 기업의 경쟁력이 최대한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정 지도자들도 소속집단 당사자들의 지지는 물론이고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을 구축해 노동관련 제도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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