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여행/ 논산 양촌면 곶감마을, 그곳에 가면 하얗게 하얗게 옛 추억이 피어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여행/ 논산 양촌면 곶감마을, 그곳에 가면 하얗게 하얗게 옛 추억이 피어난다

입력
2009.12.11 02:17
0 0

찬바람이 불기만 기다려 온 것들이 있다.

훈풍으론 제대로 그 맛을 내지 못하는 것들이다. 구수하게 익어 가는 메주가 그렇고,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부드러워지는 산골 덕장의 황태가 그렇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찬바람을 맞으면 맞을수록 단맛이 배가되는 곶감일 것이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은 작년 한 해 곶감 매출이 40억원을 넘는 곶감 마을이다. 대둔산과 바랑산 자락 골골에 자리한 마을마다 감나무로 그득하다. 이 일대에선 올해 수확한 감이 곶감으로 꾸덕꾸덕 말라 가고 있다.

이 소식을 듣고 양촌면 임화4리 이메골로 곶감 구경을 나섰다. 아름드리 감나무 몇을 스치자 곶감을 말리는 덕장(감덕ㆍ감막)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같으면 실에 꿰여 처마 밑에 달려 있을 곶감이 이젠 모양 잘 나오고 통풍도 잘 되게 위생적으로 개발된 플라스틱 곶감걸이에 꿰인 채 주렴을 늘어뜨리고 있다.

주민들이 감을 따 껍질을 벗겨 말리기 시작한 건 상강(10월 23일)무렵. 알몸의 감들은 햇빛과 찬바람을 맞아 가며 꿀보다 단 양촌곶감으로 태어난다.

양촌면의 감나무들은 거의가 두리란 종이다. 김창수(62)씨는 "이 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는다고 양촌곶감 같은 맛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고 했다. 양촌면이 아닌 곳에선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

사철 따뜻한 볕이 드는 양촌면엔 공장이 하나도 없어 물과 공기가 청정하다. 대둔산과 바랑산이 품은 골짜기라 일교차도 심하다. 김씨는 "가장 중요한 건 양촌면의 토질"이라고 했다. 마사토 성분의 양촌면 땅이 물 빠짐이 좋아야 하는 감나무에 딱 맞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현성배 이장은 "곶감은 25년 넘은 고목에서 딴 것이라야 제 맛이 난다"고 거들었다. 땅속 길게 내려간 뿌리에서 골고루 영양분을 빨아들여서인지 감나무가 오래될수록 곶감은 더욱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덕장에 내걸린 곶감에 비해 가정집 처마에서 마르고 있는 곶감은 죄다 거무스레했다.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색이 검어진다고 한다.

검을수록 단맛이 더욱 높다는데 상품용 곶감 덕장은 왜 가림막을 치고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걸까. "서울 사람들이 때깔만 보고 고르니 그러잖여. 까만 걸 내놓으면 썩었다 그러니 빨간 걸 내놓을 밖에…."

지금 막 출하되기 시작한 곶감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물컹한 반건시 상태다. 이 곶감을 더 말리면 표면에 시상이라는 하얀 분이 피어난다. 흰 분은 인공의 건조기 같은 걸로 말리면 붙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연 그대로 말렸다는 증표다.

김영호 면장이 "흰 분이 제대로 붙으려면 크리스마스는 돼야 한다"며 분이 두껍게 달라붙은 작년 것을 건네 줬다. 한입 크게 베어 물자마자 단맛이 짜릿하게 입안을 자극했다. 설탕보다, 꿀보다 달았다.

흰 분 피어난 곶감도 사람들은 곰팡이 핀 것으로 오해해 상품으로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들은 "서울 사람들은 모양만 보고 고르니 정말 맛난 것을 못 먹는 겨. 참 한심들 혀"하며 끌끌 혀를 찼다.

찐득거리는 곶감엔 그래서 이런 진득한 맛이 깃드나 보다. 팽팽하고 밝은 것보단 쭈글거리고 까만 게 더 맛있고, 부드러운 질감의 반건시보단 흰머리 뒤집어 쓴 듯한 하얀 건시가 더 달콤하다.

어르신들이 건네준 곶감을 사양 않고 받아 먹었더니 배가 불러 온다. 소화도 시킬 겸 마을을 감싸고 있는 월성봉(650m) 바랑산(555m)으로 가벼운 산행을 나섰다.

법계사 입구에서 시작된 산길은 월성봉으로 향했다. 바랑산은 경북 청송군의 주왕산과 비슷한 느낌으로 생겼다. 둥그런 암벽이 툭 튀어나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그 모양이 스님이 등에 지고 다니는 큰 주머니인 바랑을 닮아 지금의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법계사는 나이 든 비구니들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사찰이다. 산길엔 산행객이 드물어서인지 낙엽이 깊숙하게 쌓였다. 갈 지 자로 휘어져 오르는 낙엽길을 이 생각, 저 생각 떠올리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월성봉과 대둔산을 잇는 능선길이다.

월성봉 쪽으로 몇 걸음 옮기지 않아 기괴한 모양의 소나무 군락을 만난다. 반송마냥 뿌리에서 여러 가지가 퍼져 오르는 소나무들이다.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소나무 밑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곤 다시 월성봉으로 향했다. 곧 너른 시야가 열렸고 양촌면 일대가 발 아래 펼쳐졌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가니 흔들바위 표지가 나타났다. 깎아지른 벼랑 옆에 어른 대여섯 명이 충분히 앉을 만한 둥그런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직접 손을 대고 밀어 보니 바위는 쉽게 움직였다. 혼자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곳에 오른 등산객들은 오랫동안 바위를 흔들어 댄다고 한다. 흔들면 흔들수록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좋은 일만 생긴다기에…. 흔들바위에서 조금만 더 가면 월성봉 정상이고,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면 바랑산 정상을 거쳐 마을로 내려간다.

산의 맥이 지리산과 닿고 있는 월성봉과 바랑산 일대는 6ㆍ25전쟁 때 깊은 상처의 기억을 안고 있다. 당시 지리산 공비토벌 때 빨치산들은 이곳까지 밀려와 진을 치고 대항했다.

양민 학살과 토벌 작전 등으로 많은 피가 산자락에 물들었다. 당시 산 아래의 애꿎은 양촌면 주민들만 죽을 맛이었다. 밤이면 빨치산들이 내려와 양식을 빼앗아가면서 괴롭혔고, 낮이면 국군과 경찰들이 몰려와 빨치산에 부역했냐며 닦달을 해 댔다.

모진 세월을 함께해서인지 양촌면의 60년 넘은 감나무에서 딴 감은 그래서 더욱 진하고 깊은 맛의 곶감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 여행 수첩

곶감 마을 양촌면에는 고려 초 창건된 사찰인 쌍계사가 있다. 보물408호인 쌍계사의 대웅전은 아름드리 자연목을 그대로 살린 기둥이 우람하다. 연꽃과 모란을 정교하게 새긴 대웅전 정면의 5칸 문살 무늬가 매우 아름답다.

사찰의 양 옆으로 냇물이 흘러 쌍계사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쌍계사와 가까운 곳에 사육신 중 하나인 성삼문의 묘소가 있다.

양촌면은 12, 13일 양임교 논산천둔치에서 2009 양촌곶감축제를 연다. 올해로 7회째 맞는 축제다. 시중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곶감 판매장을 열고 곶감씨 멀리 뱉기, 돌발 곶감 퀴즈, 감와인 만들기, 감식초 시음회 등 다양한 참여 행사가 진행된다.

축제장을 출발해 흔들바위 월성봉 바랑산을 잇는 곶감찾기 바랑산 등산도 진행된다. 축제장에선 곶감과 함께 지역 특산물인 꽃상추, 딸기 등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양촌면사무소 (041)741_3119

오산리 햇빛촌 바랑산마을 체험마을(041_741_2900)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직접 만든 두부로 음식을 낸다. 면사무소가 있는 인천리의 양촌한우타운(041_741_0838)에선 싼값에 질 좋은 한우를 맛볼 수 있다.

양촌한우영농조합에서 생산된 고기를 직판한다. 꽃살등심(600g)이 3만5,000원, 생갈비(600g)가 3만8,000원이다. 100g당 상차림비 1,000원씩이 더 붙는다.

호남고속도로 계룡IC에서 나온 뒤 논산 쪽으로 직진하다가 국도4호선 연산사거리에서 좌회전해 20분 직진하면 양촌면소재지인 인천리에 이른다.

논산=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