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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근대 문명과 침탈의 교차로…개장港 110년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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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근대 문명과 침탈의 교차로…개장港 110년 역사 속으로

입력
2009.12.1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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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근대의 시작은 참담했다. 먼저 열지 못하고 억지로 열린 근대였기 때문에 제국의 침탈과 궤를 같이 했다. 그래서 잊고 싶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역사다.

일제에 의해 문을 연 개항장은 인천, 전남 목포시, 전북 군산시 등이다. 이식된 근대 문명은 이들 도시에서 발아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개장항들은 지금껏 당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 새로운 역사 탐방지로 부각되고 있는 개장항들을 둘러보다 보면 잠시 일본 중국 등으로 해외여행을 나온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그리고 가볍게 도심 투어를 즐기다가도 여행이 끝날 즈음엔 가슴엔 뭔가 묵직한 것이 남게 된다.

이 도시들은 또한 맛 여행지로도 최적이다. 모든 물산이 집산된 수탈의 중심지이다 보니 음식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던 곳들이다. 역사도 깨우치면서 입도 즐거운 여행지다.

■ 인천(1883년 개항)

인천역이 있고 인천항이 있는 중구는 인천의 심장부이자 근대 인천의 시작점이다. 중구청을 중심으로 근대의 흔적을 돌아보는 게 좋다. 사실 중구청도 문화유산이다. 중구청은 옛 일본영사관 자리였고, 그 아래로 조선은행건물,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등이 있다. 옛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중구청에서 차이나타운 쪽으로 가다 보면 언덕 위로 길게 이어진 계단을 만난다. 과거 청일조계지 경계로 사용됐던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왼쪽은 청나라, 오른쪽은 일본인 거주지였다. 계단 맨 위엔 공자상이 인천항을 굽어보고 있다.

계단 옆으로 인천화교중산학교 정문 앞 담벼락을 따라 <삼국지> 의 주요 장면을 그린 벽화가 150m 가량 길게 늘어져 있다. 화교중산학교는 원래 청나라영사관이었다.

인천역에서 길을 건너면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돌패루가 보인다. 높이가 11m나 되는 패루는 중국에서 보내 와 세워졌다. 차이나타운엔 이름난 중국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자장면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이다. 음식점들 사이에 있는 의선당을 꼭 찾아가 보자. 개항 후 중국을 오가는 배의 순항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목적으로 세워진 중국식 사당이다. 관음보살 관운장 등 청나라 양식의 토상이 흥미롭다.

제3패루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1888년 조성된 국내 최초의 근대 시민 공원인 자유공원이 나온다. 처음엔 만국공원, 일제 때는 서공원으로 불렸다가 6ㆍ25전쟁이 끝나고 맥아더 동상을 세운 뒤에는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이전 논란을 겪었던 맥아더동상은 여전히 공원의 정점에 서 있다.

공원 바로 아래에 있는 제물포구락부 건물은 독일 미국 러시아 일본 등 각국 조계지 내 외국인의 사교장으로 건립된 곳이다. 이 건물 바로 앞에는 날렵한 기와 지붕선이 아름다운 인천시역사자료관이 있다.

명동성당(1898년)보다도 일찍 세워진 답동성당(1897년)은 한국 초기 교회 건물의 전형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차이나타운에서 이름난 맛 집은 공화춘(032_765_0571) 청관(032_772_5118) 십리향(032_762_5888) 원보(032_773_7888) 풍미(032_772_2680) 대창반점(032_722_0937) 복래춘(032_772_3522) 등이다. 답동성당 앞 신포시장은 닭강정으로 유명하다. 두 번째 골목 끝머리에 신포맛집닭강정(032_764_5888) 신포원조닭강정(032_762_5800) 찬누리닭강정(032_765_1235) 등 닭강정집들이 늘어서 있다

■ 목포(1897년 개항)

목포역 앞 오거리는 일제 때 일본인 거주지(유달동)와 한국인 거주지(북교동 죽교동)의 경계 지역이었다. 상권이 발달하면서 양측 간 날 선 대립과 공존이 교차하던 곳이다. 목포 주먹들이 세력화한 시발점이 됐다고 알려진다.

일제가 혼마치(本町)라 구획했던 목포 중앙동 거리에선 옛 화신백화점과 당시 만주에도 지점을 냈다는 갑자옥모자점, 옛 송촌문구점(현 슈퍼마켓)을 비롯해 독특한 일본식 건물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문화전시관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옛 일본영사관은 1900년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이다. 비탈 위에 올라서서 일본인 조차지역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곳에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다. 일본영사관 건물 뒤엔 일제가 40년대 초 미군 공습에 대비해 파놓 은 82m 길이의 방공호가 있다. 또 건물 위 언덕 위엔 일인들이 참배하던 봉안전이 있었다(1996년 철거).

문화원 아래에 우뚝 선 목포근대역사관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지점 건물이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다. 동척과 멀지 않은 이훈동정원도 근대 역사의 유산이다. 호남 땅 17개 농장을 거느렸던 일본인 우치다니 만빼이가 짓고 살았던 호화스러운 집이다. 유달산 자락을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 안은 조경이 빼어ご?

무안동 한복판에는 일본식 사찰이 버티고 서있다. 30년대 지어진 일본 불교 동원본사 목포별원이다. 이 건물은 광복 후 목포중앙교회가 인수해 절집이 아닌 교회로 쓰이기도 했다. 한때 도심 재개발로 철거될 뻔했다. 지금은 문화 전시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옥암동의 인동주마을 본점(061_284_4068)은 홍탁삼합과 꽃게장으로 유명하다. 만호동 영란횟집(061_243_7311)은 사철 민어회를 내는 집. 민어 어란, 부레, 뼈다짐, 껍질도 맛볼 수 있다. 온금동의 선경준치횟집(061_242_5653)은 준치회를 비롯해 다양한 생선 요리를 내는 식당이다.

■ 군산(1899년 개항)

군산항을 통해 일제는 전북 곡창 지대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개항과 동시에 지금은 해망로라고 불리는 당시 본정통에는 미두장(쌀을 선물로 거래하는 일종의 투기장)이 들어섰고, 군산내항을 중심으로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장기18은행 등 10여 개의 은행들도 생겨났다. 지금은 불에 그을린 유흥업소 간판이 걸려 있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해방 이후 한국은행, 한일은행 군산지점, 나이트클럽 등으로 사용됐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 에 등장했던 이곳을 최근 군산시가 매입해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해망로 인근의 근대 문화 유산 중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은 구 군산세관 건물이다. 90년대까지 실제 세관 건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군산의 100년 역사를 알려 주는 사진들과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해망로와 맞닿은 군산내항에는 당시 3,000톤급 기선을 6척이나 댈 수 있었던 뜬다리부두(수면의 높이에 따라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한 다리 모양의 구조물)가 남아 있다. 수백만 섬의 쌀을 실어 나르던 곳이다. 부잔교가 있는 지역의 행정명은 장미동이란 예쁜 이름이다. 장미꽃이 활짝 펴서 장미동이 아니라 수탈한 쌀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해서 장미(藏米)동이다.

옛 히로츠가옥은 일제시대 포목상이었던 히로츠가 건축한 정통 일본식 저택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의 집으로도 등장했고, 영화 '타짜'에서 주인공 고니(조승우 분)가 스승 평경장(백윤식 분)으로부터 화투 교육을 받던 장면의 배경으로 쓰였다. 지금은 내부 정비 중으로 내년 1월 말이면 공사가 마무리 된다.

일본식 사찰 건물인 동국사는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앉았다. 건물을 감싼 무성한 대나무숲이 인상적인 곳이다. 당시는 금강사라 했다가 한국의 불교가 인수하면서 동국사란 이름을 얻게 됐다. 복도를 통해 법당 화장실 목욕탕 등이 모두가 이어지는 일본 건축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개정동 군산간호대에 있는 이영춘가옥은 일제시대 최대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의 집이었다. 그는 고리대금업으로 땅을 그러모아 한때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땅을 소유했었다.

군산을 방문한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이성당이란 빵집이다. 60년이 넘은 오랜 공력의 제과점이다. 긴 세월이 묻어난 빵 맛 덕에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군산의 명소다. (063)445_2772

명산사거리 부근에 콩나물국밥집 골목이 있다. 일흥옥(063_445_3580) 일해옥(063_443_0999) 등에 인파가 몰린다. 옛 조선은행 앞 중국집 빈해원(063_445_2429)은 화교가 운영하는 57년 된 식당이다.

인천ㆍ목포ㆍ군산=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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