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이것만 먹으면 힘이 불끈하더라는 비장의 메뉴를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다.
내 경우 바로 그 메뉴는 설렁탕인데, 특히 학생 시절부터 부모님 따라 드나들던 단골집의 탕 맛이 특히 그렇다.
정정하신 할아버님 할머님이 문간에 번갈아 앉아 계신 모습, 주방과 홀을 잇는 창문들로 쉴 새 없이 퍼 나오는 따끈한 국물, 구수한 서비스의 할머님들까지 세월이 이십 년 넘게 지났어도 어떤 풍경하나 변한 것이 없다.
이른 아침이든, 자정을 넘긴 새벽이든 힘이 필요하다 느낄 때면 언제든 갈 수 있다. 조미료가 섞이지 않은 정직한 국물에 늘 푸짐한 깍두기와 김치로 허한 속을 착착 채우면 탕 집에 들어설 때와는 사뭇 다른 힘찬 걸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게 된다.
내 돈 내고 사먹는 음식이라지만 나는 늘 그 자리에서 같은 국물, 같은 김치 맛을 만들어 주시는 할아버님 할머님이 고맙다.
에너지를 주는 설렁탕처럼 맛 자체로 힘이 되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음식점의 분위기나 주인장이 좋아서 가게 되는 곳들도 있다.
결혼 후 5년간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가까운 골목에 단골집 하나쯤은 만들어지게 마련. 우리 집 앞 골목에는 유난히 손님을 반기는 작은 밥집이 하나 있었다.
밥 짓고, 국 끓이고 뭐라도 굽거나 볶아서 상 차리는 것을 즐기는 나는 외식하는 일이 잦은 편이 아니지만 가끔씩 남편의 퇴근길에 눈이라도 내리면 골목 입구에서 만나 집 앞 식당에 들르곤 했다.
주인장은 감자탕이랑 도리탕을 맛있게 해 주셨다. 그래서 점심 때는 백반 손님들이, 해가 지고 나면 감자탕에 소주 한잔 걸치는 손님들이 많았다.
한두 달에 한 번, 우리 부부도 감자탕에 소주나 한잔 하려고 들르면 "니 얼굴이 와 그리 상했노? 밥 좀 마이 묵으라" 하시며 있는 찬 없는 찬을 챙겨 주시곤 했다.
나는 나대로 엄마처럼 이모처럼 마음 써 주시는 것이 감사해서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스 바를 사다 드리곤 했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로 힘을 얻고 오는 밥집이었다.
올 가을부터 유난히 바빠진 우리 부부가 모처럼 시간을 맞춰 감자탕을 먹으러 갔던 며칠 전 식당이 있던 자리는 공사 중이었다. 건강하시라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주인장은 이미 고향으로 내려가신 터였다.
골목에 신세대형 인테리어의 새로운 밥집들이 들어서면서 오래된 밥집은 영업을 접어야 했나 보다. 에너지를 주는 음식이 있다면 곁에 있을 때 자주 들러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더해진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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