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조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오랜 궁금증에 대한 해답에 과학자들이 한 걸음 다가갔다.
약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넘어온 인류는 5만년 전쯤 인도 남부 등 살기 좋은 해안가에 정착했다. 얼마 뒤 이들 가운데 일부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으로 이동했고, 또 다른 이들은 더 따뜻한 태평양섬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북쪽으로 옮겨갔다.
이들 중 일부가 중국을 거쳐 다시 남하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한반도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긴 여정을 거쳐 비로소 한반도에 터를 잡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뿌리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10개국이 참여한 인간게놈연구회(HUGO) 소속 과학자 90여명이 새롭게 밝혀냈다. 2004년부터 동남아시아 73개 인종을 대상으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얻은 결론이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11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한국을 비롯한 현재 아시아인 대부분의 조상이 아시아 남부를 통해 유입됐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단일이주설'이다. 이는 선사시대 아시아로의 인구 유입이 아시아 남부와 중앙아시아 두 경로를 통해 이뤄졌다(다중이주설)는 기존 학설과 달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중이주설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남부 해안으로 건너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인류가 중동, 아라비아,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쪽으로 유입됐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약 4만년 전 동북아시아로 이동해갔다는 것. 두 가지 경로로 유입된 인류가 현재 아시아인의 유전적 분포에 비슷한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는 게 다중이주설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중앙아시아를 통해 들어온 인류가 아시아 대륙에 자손을 많이 퍼뜨리지 못해 유전적 영향이 미미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에 참여한 강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은 "다중이주설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아시아 남부 해안을 통해 유입된 인류가 아시아인의 주류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고 말했다.
기존 학설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분석 대상 유전자가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유전자가 뭉쳐 있는 세포 내 구조물)는 22쌍의 상염색체(보통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로 이뤄져 있다. 이번 연구팀은 상염색체의 유전자(DNA)에서 각 인종 간에 변이가 일어나는 부위를 비교했다.
반면 다중이주설은 성염색체인 Y염색체와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분석해 나온 학설이다. 강 연구원은 "성염색체 유전자는 다음 세대가 되면 사라지지만 상염색체 유전자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도 그 흔적이 계속 남는다"고 말했다. 좀더 정확한 자료를 이용한 것이어서 기존 연구보다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시아 남부 해안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사람들은 이동 과정에서 이미 현지에 터를 잡고 있던 원주민들을 만나 혼인하고 자손을 낳으며 유전자가 다양해졌다. 이렇게 해서 현재 학계에서 분류하는 오스트로네시안, 오스트로아시안, 타이카다이, 후모민, 알타이족 등 아시아 5인족이 생겨난 것이다. 한국인은 알타이족에 속한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웃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 중국, 일본이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연구에 참여한 생명공학기업 테라젠의 박종화 바이오연구소장은 "한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유전적 차이를 100이라고 하면 중국인과는 5.03, 일본인과는 4.23, 유럽인과는 58.2만큼의 차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아시아의 다양한 인종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한 이번 연구 결과가 앞으로 약물에 대한 아시아인의 생리적 반응과 질병 발생 경로를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소형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