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었지만 아이처럼 천진하다. 강산이 세 번 가까이 변했을 27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기 때문인 듯 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아이들과 10년은 더 있고 싶단다.
17일 방송 8,000회를 맞는 KBS1 TV 어린이 프로그램 'TV유치원 파니파니'. PD와 작가가 바뀌고 많은 출연자가 거쳐갔으며 2007년 1월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지금 식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지금껏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1982년 9월 20일 첫 방송 때부터 아이들에게 연기, 노래, 무용을 지도한 동요 작곡가 김방옥(72)씨가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세월 가는 줄 몰랐어요. 특집방송 녹화에서 '8,000'이라는 숫자를 보니 '오래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방송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PD, 작가 등 제작진 7, 8명은 첫 방송 준비를 위해 여관에서 밤을 지샜다. "유치원에 못 가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산간벽지의 어린이들도 'TV유치원'만 보면 유치원에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죠. TV에 출연하는 아이들에게 예쁜 분홍 리본 대신 검은 고무줄을 매게 해 이 프로를 시청하는 아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했어요."
그는 1959년 서울교대 재학 중 KBS 라디오 '이 주일의 동요'의 노래 지도교사로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TV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이 매주 노래 한 곡을 따라 부르게 했다. '그대로 멈춰라', '둘이 살짝' 등 동요 1,000여 곡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금도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그대로 멈춰라'가 흘러 나온다. 김씨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취미인데 돈까지 받고 취미 활동을 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냐"고 말했다.
그만 두겠다는 마음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에 속앓이를 한 적은 있다. 자식 사랑이 유난한 일부 엄마들이 '내 아이를 왜 무대 뒷줄에 세우고 구박하냐. 노래 선생이 뇌물 받은 게 아니냐'며 방송국 등에 투서를 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곤경에 처했지만 주위의 변함없는 믿음이 그를 구했고 지금껏 방송을 할 수 있게 했다.
탤런트 하희라, 개그맨 유재석, 가수 박진영 등과 관련한 일화도 들려주었다. 한번은 춤 잘 추는 아이들을 모아 녹화를 하는데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하희라가 유난히 재능을 보여 그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며 안무를 가르쳤다. MC 유재석의 무명시절 모습도 생생하다. "유재석이 우리 프로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별로였어요(웃음). 그런 재석씨가 얼마 전 제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얼굴에서 광채가 났어요."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겸 가수 박진영의 1집에도 '그대로 멈춰라'가 실려 있다. 박진영이 1994년 가수 데뷔 당시 그의 매니저가 찾아와 "가수를 꿈꾸는 친구가 어릴 때부터 즐겨 들었던 동요인데 데뷔 앨범에 싣고 싶어 한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그대로 멈춰라'는 쌍둥이 가수로 화제를 모은 량현, 량하의 '춤이 뭐길래'에도 담겨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이가 TV에서 섹시 춤을 추고 성인가요를 부르잖아요. 그것을 보고 어른들이 박수를 보내는데 저는 가슴이 저려요. 어린이 프로그램만큼은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아야 합니다. 방송시간대 등에서도 배려를 해야 합니다."
17일 오후 4시 40분 방송되는 특집 '8,000번의 만남, 우리는 친구'는 22명에 이르는 '하나 언니'와 역대 출연자 등이 모여 '동요 쇼' '짤랑짤랑 체조' 등으로 꾸며진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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