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배를 좀 채우는 게 좋을 것 같다. 위가 비어 있으면 영화를 보다 속절없이 분비되는 위산 때문에 속이 꽤나 쓰릴 듯 하다.
'줄리 앤 줄리아'는 맛있는 영화다. 스크린을 채운 프랑스 요리가 입맛을 다시게 하고, 배우들의 연기 성찬이 입맛을 더욱 돋운다. 조미료를 뺀 듯한 깔끔한 연출은 개운한 뒷맛을 남긴다. 오랜만에 행복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요리 영화다.
영화는 194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에 살았던 미국인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와 21세기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의 삶을 이어 붙인다. 50여 년이란 시간으로 단절된 두 사람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은 프랑스 요리다.
줄리아는 남편 따라 파리에 갔다가 요리에 재미를 붙인 40대 여인. 늦깎이로 유명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에서 공부하고 <프랑스 요리 예술을 마스터하기> 라는 베스트셀러 요리 책을 저술한 실존 인물이다. 줄리는 줄리아의 책에 있는 524개의 요리를 1년 동안 실제 요리하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담으며 작가로서의 자아를 찾는, 역시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
영화는 두 여인이 요리를 하며 불임, 인생의 진로 같은 삶의 요철들을 넘어가는 과정을 웃음을 섞어 전한다. 요리 영화이기도 하지만 요리를 통해 더욱 성숙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다.
욕심 내지 않고 두 사람의 사연을 차분하게 접붙인 빼어난 연출도 이 영화의 매력이지만 두 배우의 연기는 단연코 엄지 손가락을 올릴 만하다. 특히 남편보다 한 뼘 정도나 큰 키에 코맹맹이 목소리로 유쾌한 수다를 쏟아내는 줄리아 역의 스트립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과연 그의 자리를 대신할 배우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감독 노라 애프론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각본을 쓰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유브 갓 메일'(1998)을 연출했다. 여자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한 솜씨로 다뤄온 감독답게 빼어난 세공술을 선보인다. 4,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미국에서만 9,412만 달러를 벌었다. 등장 인물들이 종종 외치는 대사 '보나베티(Bonappettiㆍ'맛있게 드세요'란 뜻의 프랑스어)'가 너무나 실감나는 영화. 10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