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종플루 발생 사실 공개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남측이 신종플루 치료제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북한이 이를 수용하면 남북 당국간 공식 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만 수용하고 남측에는 손을 벌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이 9일 신종플루 발생 사실을 인정한 이유는 뭘까. 북한 내부 정황을 전하는 소식지들은 최근 평양, 신의주 등에서 신종플루 사망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를 쉬쉬해왔다는 소식도 곁들였다.
북한은 원래 외부에 비치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체제다. 따라서 북한이 신종플루 발생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례적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은 이날 "해당 기관에서 신형독감(신종플루)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검역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예방과 치료사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 보건의료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북한의 의료시설은 우리의 1960, 70년대 수준밖에 안 된다"며 "신종플루 치료제나 예방 백신도 외화 부족 때문에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8일 북한에 신종플루 치료제를 지원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통일부가 지시에 맞춰 움직이자 북한은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내용을 공개했을 수 있다. "화폐개혁 조치로 가뜩이나 어지러운 민심이 신종플루 때문에 더 동요하지 않도록 남측의 지원을 수용하려는 것"(대북 소식통)일 수도 있다.
정부는 이르면 10일 신종플루 지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접촉 의사를 북한에 타진할 계획이다. 치료제 지원 물량과 방식 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정확한 피해 실태와 그들의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은 지난 10월 싱가포르에서 고위급 물밑 접촉을 가졌고, 지난 달에는 개성에서 비공개접촉을 갖고 남북 현안들을 놓고 협의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식량지원 물량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다가 대화를 중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플루 지원을 계기로 남북 접촉이 재개되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물꼬가 트일 수 있다.
2004년 7월 탈북자의 대거 입국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 대화가 수개월째 단절됐다가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도 2005년 4월 북한 조류독감 치료제 지원 협의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관계 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의 무상 지원만 받고 남측의 지원 제의를 거절할 수도 있다. 최근 벌어진 대청해전과 옥수수 1만톤 지원 제의 등으로 남측에 대해 감정이 상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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