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의 악령이 '신(神)의 나라' 그리스를 덮쳤다. 신들도 거대한 나라 빚과 버블의 후폭풍은 막지 못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8일(현지시간)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전격 하향조정 했다. 앞서 S&P도 그리스를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올려 놓은 상태여서, 이 나라의 신용등급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이날 신용등급강등으로 두바이에 이은 '또 다른 뇌관'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국제금융시장은 불안조짐이 역력했다. 그리스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이날 2%포인트(200bp)를 넘어섰다.
피치가 등급을 내린 이유는 그리스의 악성재정구조 때문. 그리스의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13%에 달하고, 정부부채는 GDP 대비 1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50억달러에 불과해 외국자본이 이탈할 경우 매우 취약한 구조다. 관광과 낙농업에 의존하는 등 산업 기반이 취약하고 경제 수준이 서유럽에 못 미치는데도, 유로화 사용국이어서 유로화 강세에 시달리는 구조적 문제가 누적돼 왔다. 재정적자나 정부부채를 줄이려는 EU의 권고가 계속됐지만 이행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리스의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안이어서, '검은 화요일'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증시 하락폭은 1% 내외였고, 수요일(9일) 아시아 증시도 낙폭도 크지는 않았다. 한국증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에도 불구하고 소폭 상승 마감했다. 6개 주요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가 0.6% 상승하고 국제유가가 1.8% 떨어지는 등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나타났지만, 변동폭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두바이 사태보다 그리스 신용등급 강등의 잠재적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두바이는 중동지역 일부 국가에 채무가 집중돼 있어 영향도 국지적이었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의 위기는 가깝게는 동유럽, 나아가 영국과 유럽전체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도차는 있지만 EU대부분 국가들이 그리스처럼 재정악화에 시달리고 있어, 자칫 신용등급 강등파장은 유럽전역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두바이의 모라토리엄(대외지불유예)선언으로 대형부실이 불가피해진 유럽계 은행들은 추가적 손실이 예상돼, '유럽발 리만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전세계 국가들이 전례 없는 경기 부양책으로 재정적자가 급증한 상태여서, '제2의 그리스'가 나올 확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무디스는 이와 관련, "미국과 영국이 재정적자 급증 문제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AAA등급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전세계가 금융부실을 재정이 떠안은 채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위기를 헤쳐 나왔기 때문에 그리스 사태는 그러한 해결 방식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유럽 선진국 및 일본 등으로 불안 기류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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