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이 이렇게 대단한 법률인 줄 몰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7일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마자, 정부(금융위원회)와 금융권(각 금융관련협회) 금융을 담당하는 다른 상임위(정무위)까지 나서 강력 반대입장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정부와 민간, 국회까지 이렇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안이 또 있을까 싶다.
한은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를 통과한 것은 7일 오전.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중앙은행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한은의 금융기관 조사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1년 넘는 논의 끝에 마련된 법안이었다. 하지만 법 통과 직후 독점적 감독권을 잃게 된 금융감독원을 대신해 금융위원회는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밝혔고, 이어 6개 금융기관 단체장들이 이례적으로 합동 기자회견까지 열어 "(한은의 조사권이 확대되면) 중복검사로 업무부담이 커진다"면서 관할부처인 금융위ㆍ금감원을 '지원사격'했다.
하이라이트는 이날 저녁 무렵 국회 정무위가 한은법 개정안 심사를 유보해달라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공식 요청한 것. 한 상임위가 만든 법에 대해 다른 상임위가 심사보류요청까지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무위로선 자신들이 관할하는 금융위ㆍ금감원을 감싸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정무위로서야 금감원이 독점하던 감독권이 한은으로 좀 넘어간들 큰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관할부처가 그토록 반대하는 사안인 만큼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글쎄, 이런 것도 '내리사랑'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지만, 실상은 '제식구 감싸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기야 기획재정위가 애초 금융위 및 정무위 반대를 무릅쓰고, 한은법 개정안 통과를 강행한 것 역시도 다를 건 없다.
적어도 한은법에 관한 한 여야도, 진보ㆍ보수도 없다. 그저 상임위만 있을 뿐. 이견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국회마저 상임위로 나뉘어져, 소관부처 밥그릇 싸움의 대리전을 치르는 것은 입법기관답지 못한 처사다.
최진주 경제부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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