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의 수신료 인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핵심은 두 가지다. 언제, 얼마나 올릴 것인가. KBS 쪽 사람들은 수신료를 당장 두 배쯤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 공영 방송사의 수신료가 많게는 우리의 8배 가깝다며 30여 년간 수신료를 동결시킨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다. 2,500원인 수신료를 6,000원 남짓으로 올리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장은 재원의 40%를 차지하는 광고비를 20% 수준으로 낮추고 수신료를 4,500원 정도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독립과 개혁 시급
말이 나온 김에 외국 공영방송사의 수신료 사정을 살펴보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년 전, 정치권에서 책정한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폭이 너무 적다고 위헌 결정했다. ARD와 ZDF, 두 공영방송의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고 방송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혀졌다. 영국의 올해 조사에서 국민의 77%는 BBC가 영국의 방송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BBC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69%였다.
2005년 무려 4,000여명의 인원을 줄인 BBC는 2012년까지 전체 직원의 12%인 2,800명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600여명의 간부 직원은 18%가 감축될 예정이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도 직원 10% 감축과 조직 통폐합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수신료 인상 대신 오히려 10% 인하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NHK의 2008년 수신료 수입은 전년도보다 증가했다. 자발적인 수신료 납부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KBS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출범을 앞둔 종합편성 채널에 광고를 모아주기 위해 수신료를 인상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더불어 KBS가 외부 입김에 약하고 내부 자정능력 역시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사장 선임 파동, 감사원 지적 외면, 공공성 강한 프로그램 폐지, 권력에 밉보인 진행자 교체 등에 대한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가장 신뢰받는 매체였던 KBS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2년 사이 13.2%나 하락했다는 조사결과도 발표됐다.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KBS와 방송통신위원회, 여당 원내대표 등은 수신료 인상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수신료 인상은 KBS 이사회와 방통위를 거쳐 국회가 승인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KBS-방통위-여당이 작심하고 나서면 수신료 인상은 법적으로 어렵잖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다수로 밀어붙여 번개처럼 해치운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자본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 KBS를 지키러 왔다는 신임 사장의 취임사는 저널리즘 교과서처럼 바르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치 권력'의 의미가 일반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지 헷갈린다. 대선후보 방송특보를 지내고 당선자 언론보좌역을 맡은 이력 때문이다.'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외치는 것이 오히려 '시청자로부터 독립'으로 들릴 수 있다.
국민 사랑과 신뢰 얻어야
공영방송은 권력의 부정한 행사를 견제하고 자본의 부당한 사용을 감시해야 할 외로운 숙명을 지니고 있다. 수신료는 이 숙명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국민이 보내주는 독립운동 자금이다. 정치권과의 유대를 통해 법적으로 쉽게 처리하려고 하는 대신 프로그램과 경영구조 개선을 통해 시청자를 설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KBS가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처럼 국민의 자랑거리로 여겨질 때 누가 시청료 인상을 반대하겠는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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