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씨는 지난 2007년 개발예정지 인근 토지를 25억원에 사들였다. 그리고 1년 후 토지를 50억원에 부동산 개발업체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개발업체와 짜고 양도가액 30억원짜리 이른바 ‘다운계약서’(실제보다 낮은 가격으로 작성한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차익 5억원에 대해서만 양도소득세를 물었다.
여기까지는 그 동안 부동산 투기에서 흔히 활용돼 온 다운계약서의 전형. 문제는 나머지 20억원이 박씨에게 흘러 들어간 방식이었다.
토지 매입 당시 50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을 받은 개발업체는 30억원은 다운계약서대로 박씨에게 정상적으로 넘겼지만, 나머지 20억원은 은행 직원과 짜고 차명계좌를 만들어 박씨에게 전달한 것. 결국 박씨는 양도차익 20억원에 대한 세금은 한 푼도 물지 않고, 개발업체도 그만큼 법인세를 탈루한 셈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끈질긴 추적으로 이 같은 사실이 적발돼 박씨는 양도소득세 10억원을 추징당했고, 부동산 개발업체도 1억원의 법인세를 내야 했다.
부동산 투기세력들의 세금 탈루 방식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교묘해지고 있다. 과거 다운계약서, 복등기(전매금지가 해제된 후 당첨자 명의로 등기했다가 곧바로 매수자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전매방식), 지분 쪼개기, 알박기 등 전통적인 투기 방식에서 갈수록 ‘진화’한 ‘신종 투기’ 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8일 ‘2009년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거래 관련 신종 탈세 사례를 공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토지 거래 시 소득이 없어 세금 낼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속칭 무능력자)를 중간에 끼워 넣어 세금을 탈루하는 방식. 예를 들어 8억원에 산 토지를 산 사람이 제3자에게 20억원에 되팔 경우, 먼저 중간에 무능력자에게 소유권을 허위로 이전시키고 무능력자가 최종 매입자에게 판 것으로 서류를 작성하면 세금을 한 푼도 물지 않아도 된다. 실제 토지 소유자는 12억원의 차익을 챙겼지만 서류상으로는 무능력자가 매매한 것처럼 조작해 세금을 탈루하는 것이다.
부동산 증여 과정에서 직원 명의 통장을 이용해 경우도 있었다. 사업가인 송모씨의 경우 철거민 등에게 주는 이주자 택지를 전매제한기간 중 불법으로 사들인 후 이를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직원 명의 통장으로 대금을 지급해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이 밖에도 ▦해외 고객을 상대로 한 수입을 신고 누락한 뒤 그 자금으로 강남권의 고급아파트와 그린벨트지역의 건물을 취득한 특허법률사무소와 ▦현지 농민 명의로 농지를 취득해 되판 후 수입금액을 신고누락하거나, 매매계약서의 취득가액을 부풀려 매출원가를 손금처리 한 기획부동산업체도 신종 사례로 꼽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들어 투기세력의 세금탈루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다”며 “앞으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엄정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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